내용만 보면 TV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뺨친다. 남자주인공은 출세를 위해 여자를 이용하고, 여자는 사랑에 눈이 멀어 조국과 가족을 배신한 끝에 죽임을 당한다. 그의 쌍둥이 언니는 복수를 위해 여동생으로 가장한 채 의붓아들인 남자주인공을 유혹해 파멸로 몰아넣는다. 위에 인용한 대사는 언니가 여동생 죽음의 비밀을 안 뒤 복수를 맹세하면서 토해내는 것이다. 그 뒤를 잇는 대사는 더 자극적이다. “동생아, 네 원한을 내 몸으로 풀자.”
국립극단의 국가브랜드 공연 2탄이자 올가을 서울에서 열릴 씨어터 올림픽스 한국대표작으로 참가할 국립극단의 ‘둥둥 낙랑 둥’이다. 남자주인공은 고구려 왕자 호동이고, 여주인공은 낙랑공주의 언니이자 호동의 의붓어미로 설정된 고구려 왕비다.
최인훈 원작의 희곡은 설화 본래의 핵심 이야기가 끝난 시점에서 시작한다.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자명고를 낙랑공주가 미리 찢어준 덕에 낙랑 정벌엔 성공하지만 공주는 잃은 호동의 고구려군 회군 장면이 그 시작이다. 설화 속 이야기는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 호동의 회상을 통해 재구성될 뿐이다. 그 촉매제는 공주의 쌍둥이 언니이자 의붓어미인 고구려 왕비다.
왕비야말로 희곡의 주인공이다. 호동은 왕비의 모습을 보면서 공주를 떠올리고,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의붓어미를 연인으로 호명한다. 여동생 죽음의 비밀을 뒤늦게 전해들은 왕비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현대의 정신분석가마냥 행동한다. 여동생 역할을 자임하며 호동과 일종의 역할놀이를 펼친다.
여기서 왕비가 고구려의 가장 큰 무당이란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삶과 죽음, 다른 사람의 영혼을 넘나드는 무당은 무의식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정신분석가와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그들의 가상놀이는 점차 현실이 되고, 진짜 사랑에 빠진 왕비는 극도의 정체성 혼란에 빠져든다.
서로 닮은 두 인물로 인해 빚어지는 정체성 착오는 일반적으로는 희극적 장치로 쓰인다. ‘둥둥 낙랑 둥’은 이를 비극적 장치로 변모시킨 뒤 진실과 허구, 사랑과 복수, 삶과 죽음을 뒤섞는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너무도 익숙한 설화를 심층적 구조를 갖춘 낯선 이야기로 발효시킨다. ‘복수혈전’에만 목마른 TV 드라마들과 이 작품의 본질적 차이다.
국립극단 최치림 예술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은 이번 작품은 이 점을 뚜렷이 자각한다. “누리여 너는 왜 밤 아니면 낮 둘밖에 없느냐”는 왕비의 대사를 중심으로 이분법적 세계를 무화(無化)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극의 시작과 중간 말미에 호동과 낙랑공주를 위한 별도의 해원굿 장면을 삽입한 것 역시 이분법에 물든 세상을 치유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문제는 그 해원굿의 삽입으로 인해 원작의 중층적 작품구조가 호동과 낙랑공주의 러브스토리로만 축소된다는 데 있다. 서울 씨어터 올림픽스의 주제 ‘사랑’을 의식한 포석이지만 그로 인해 작품 속 왕비와 호동의 또 다른 비극적 사랑은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랑과 복수의 갈림길에서 길을 잃은 왕비야말로 햄릿과 그의 어머니 거트루드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존재다. 굳이 해원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피붙이에 대한 복수의 맹세로 번민하는 햄릿과 모성애를 압도하는 애욕에 번뇌하는 거트루드의 두 얼굴을 함께 지닌 이 매력적 캐릭터의 몫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공주에 가까운 곽명화 씨의 연기보다는 왕비에 가까운 계미경 씨의 연기가 더 눈길을 끈다. 이상직 씨의 섬세한 호동과 이지수 씨의 선 굵은 호동의 연기대결도 볼 만하다.
한편 외국 관객을 의식해 호동과 낙랑공주의 사연을 압축적으로 펼쳐놓는 극 도입부는 그림자극이나 꼭두각시 인형극 형태로 자명고에 얽힌 전설만 암시하는 것이 더욱 세련되지 않았을까 싶다. 1월 6∼14일 서울 중구 장충단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02-2280-4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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