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출산후 바뀌는 여자들 속내, 진솔하지만 가벼운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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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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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엄마들의 수다’
연기 ★★★★ 대본 ★★★☆

출산 후 완전히 바뀐 삶을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엄마들의 수다’. 왼쪽부터 염혜란, 정수영, 김민희, 김로사 씨. 사진 제공 연극열전
출산 후 완전히 바뀐 삶을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엄마들의 수다’. 왼쪽부터 염혜란, 정수영, 김민희, 김로사 씨. 사진 제공 연극열전
‘엄마’들은 1시간 반 동안 온갖 수다와 하소연을 시시콜콜 늘어놓는다. 연극 ‘엄마들의 수다’에는 출산으로 엄마의 삶을 시작한 여자들의 속내가 가득 담겼다. 여배우 4명이 엄마 16명과 4명의 아이 등 1인 다(多)역을 맡아 병원, 대형마트, 유치원 등에서 젊은 엄마의 일상을 펼쳐 보인다. 의자 몇 개가 전부인 무대를 메우는 건 엄마들의 말이다. 진통 중인 산모가 “너, 지금― 내가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 밥 먹고 왔니! 그게 넘어가냐!”라고 남편에게 소리치면서 극이 시작된다. 에피소드 스무 개가 빠르게 전개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 여기’라는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기에 객석에서는 공감의 웃음과 추임새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엄마들의 수다’가 극적 긴장을 유지하는 까닭은 여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 덕분이다. 엄마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 다가온다. ‘똑순이’로 잘 알려진 배우 김민희 씨의 또렷한 발성과 능청스러운 연기가 돋보였다. 배우 정수영, 김로사, 이선희 씨 등 여배우들 간의 호흡도 맛깔스러웠다.

한때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삼청동을 누비며 에스프레소를 즐기던 여인은 “임신하고 나서부터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지성? 마음? 그딴 게 어디 있어. 난 내 몸에서 시키는 대로 하기도 바빴어요. 입덧부터 자꾸 커지는 몸에, 내 몸 속의 작은 생명은 어찌나 가리는 것도 많으신지.”

낳기만 하면, 말만 하면, 어린이집 보낼 때쯤 되면 괜찮을 거라는 주변의 말을 믿었지만 육아와 집안일의 쳇바퀴는 끝없이 굴러간다. “이 아이를 위해선 죽을 수도 있다” “유모차계의 중형세단… 이 정도는 해야지”라며 강한 모성애를 보이다가도 “내 아들이 내 남편하고 똑같다고 생각하면 가끔 참 키우기 싫다”, “혼자 큰 침대를 차지하고 자고, 누가 차려주는 밥 혼자 고요하게 먹고, 혼자 TV 프로그램 하나 제발 끝까지 한 번 보고 싶다”, “여자도 사람도 아닌 가구가 된 거 같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수다는 딱 이 지점에서 머문다. 자식과 남편의 관계에 묶인 엄마, 엄마가 되고 나서야 자신의 엄마를 돌이켜보는 그 선에서 멈춰 선다. 공감의 카타르시스는 극장을 떠난 뒤까지 긴 여운을 남기지 못하고 이내 휘발돼 버렸다. 2월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3만5000원. 02-766-6007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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