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파를 녹인 ‘사랑의 연하장’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1월 8일 03시 00분



혹시 편지를 써 본 적도, 받아본 적도 무척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옛 사연을 담은 편지글이 서랍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꿈과 추억을 상기시켜준 적은 없습니까.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항상 기억하기에 인간 기억의 책상은 너무 좁다고. 때론 엉뚱한 것들이 진짜 소중한 것들을 밀어내고 주인 행세, 귀빈 행세를 한다고. 그래서 정말 소중한 것들은 기록해 놓았다가 가끔 꺼내봐야 한다고. 소중한 관계의 조각들을 담는 ‘관계의 꽃병’을 장만해야겠다고.

우리 시대 사람들의 ‘러브 액추얼리(Love actually)’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올해 1월 3일까지 ‘동아일보는 사랑을 싣고…사랑의 연하장 쓰기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11층 사은데스크 앞에 연하장을 비치해 고객들이 자유롭게 연하장을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e메일(weekend@donga.com) 신청도 받았습니다.

승진에서 탈락한 남편을 격려하는 아내의 응원/10년 전 겨울, 애인이 준 쪽지를 가져와 엽서에 붙이고 이젠 부칠 수 없는 ‘수취인 불명’ 연하장을 띄운 사연/노부모를 모시는 형수와 제수에 대한 감사/고향에서 홀로 분식점을 꾸려가는 엄마에 대한 위로/1964년 봄 부산에서 만났던 당시 ‘아리따운 숙이’에게 쓴 글/삐뚤삐뚤한 7세 여자 유치원생의 가족 그림/자신이 직접 부도처리한 기업체 사장님을 걱정하는 은행원의 마음…. 형형색색 털실로 짠 따뜻한 목도리 같은 사연들이었습니다.

인스턴트 디지털 메시지가 범람하지만 여전히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이 편지글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일에 뿌듯해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번잡한 백화점에서도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편지를 쓰던 여러분의 얼굴은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요.

황동규 시인은 ‘즐거운 편지’란 시에서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고 했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듣게 하소서’란 시에서 ‘들으려는 노력도 아니하면서 당신과 이웃과 세상에 대해 멋대로 의심하고 불평했음을 지금은 뉘우칩니다’라고 했습니다. 느린 속도로 쓴 새해 연하장은 주변의 이웃을 둘러보게 할 뿐 아니라 내면의 마음가짐도 돌아보게 합니다. 스피드가 추앙받는 시대에 느림은 언뜻 바보 같아도 현인(賢人)의 모습을 할 때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새해 소망 한 가지 한 가지가 모여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새해 소망이 될 것입니다. 새해에 소망하신 모든 것이 이뤄지길 간곡히 기원합니다.



글=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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