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12월이 되면 도시마다 장(場)이 열립니다.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열리는 이 장은 ‘바이나흐츠 마르크트(크리스마스 시장)’라고 불립니다.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각종 공예용품을 비롯해 꿀로 만든 초, 군밤, 생강과자 등 독일 특산품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시장인 셈이죠.
사실 독일의 겨울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매섭게 추운 데다 오후 4시만 돼도 어둑어둑해지는 일기(日氣) 탓입니다. 그런 독일에서 12월에만 볼 수 있는 바이나흐츠 마르크트는 이방인들에게 큰 위안이 되곤 합니다.
그렇게 말로만 듣던 바이나흐츠 마르크트를 지난해 12월 독일 출장길에 마주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인파에 휩쓸려 걷다 우연히 뢰머 광장에 마련된 장터에 닿은 겁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광경이었습니다. 회전목마에 화려한 루미나리에(조명 조형물) 장식까지 어우러져 축제를 방불케 했습니다. 손재주가 돋보이는 갖가지 크리스마스 장식품이 휘황한 빛을 뿜었고, 곳곳에서 달콤한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코끝이 시린 날씨였지만 광장을 가득 채운 인파는 여유롭게 쇼핑을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을 합창단의 캐럴이 흐르는 가운데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특히 와인에 오렌지 껍질과 계피 등을 넣고 끓여 낸 ‘글뤼바인(따뜻한 와인)’을 마시며 겨울의 정취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그때의 글뤼바인이 새삼 떠오른 건 이번 주 초 수도권에 쏟아진 눈 때문이었습니다. ‘눈폭탄’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나게 내린 눈은 새해 첫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고생길로 만들었습니다. 기자 역시 마비된 지하철 1호선에 갇혀 아침부터 진을 쏙 뺐습니다.
하지만 1937년 기상 관측 이래 최대라는 이날 눈은 수십 년 만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날 저녁 과실주를 끓여 보온병에 담고는 가족과 함께 동네 놀이터로 나섰습니다. 무릎 높이까지 쌓인 눈 위를 구르고 신나게 눈싸움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꽁꽁 언 발을 구르며 따끈한 과실주를 들이켰습니다. 그 온기는 가슴속 깊이 새겨졌습니다. 이 겨울, 지친 일상을 달래 줄 낭만 한 조각씩 품어보는 건 어떨까요. 빙판길 때문에 고될 내일 출근길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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