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진실이 보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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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8일 03시 00분


여기는 시각장애인 학교다. 개학식을 기다리는 들뜬 분위기 속에 낯선 학생이 등장한다. 스스로를 ‘불쌍한 장님’이라고 말하는 전학생 시우(전종배). 보이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그는 어두컴컴한 삶을 저주한다. 기로(박정열)는 학교를 잠식해가는 시우의 그림자를 막아보려 하지만, 시우는 맞선다. “앞을 보는 것, 불가능한 것은 알지만…이 소원 하나로 내 인생이 재가 된다 해도, 난 앞이 보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어, 행복해서도 안 되고.”

연극 ‘맹목(Blindness)’이 13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보이는 데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보이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것인가’를 묻는 묵직한 정극이다. 지난해 4월 한국 초연 이후 두 번째 공연이다. 지난해 공연은 한태숙, 서재형 연출이 이은 극단 ‘물리’의 3세대 연출가 오김수희 씨(32)의 데뷔작이었다. 그가 이번 공연에도 연출을 맡았다. ‘맹목’은 초연 때 호평을 받으며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시우와 기로는 안 보이는 것과 못 보는 것, 안정과 변화, 이상과 현실 등 극단적인 두 세계를 각각 대변한다. 시각장애인 학교는 진실을 볼 수 없거나 보기를 거부하는 나약한 인간의 내면세계다. 그 속에서 웅크린 채 평화롭게 지내던 학생들은 시우가 던진 현실에 대한 자각과 의문으로 외면해오던 현재의 상황에 눈을 뜨게 된다. 오김수희 연출은 “모든 등장인물은 자신만의 맹목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그 인간 자체이며 그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그들은 맹목 때문에, 혹은 그 맹목을 버려서 끊임없이 변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희극작가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1946년)가 원작이다. 시대배경, 지역, 등장인물의 나이가 명시되지 않은 원작을 각색했다. 아르코예술극장의 2010년 첫 기획 작품으로 선정됐다. 전진기, 김혜강, 김정민, 한이, 양윤희, 박민수, 이문준 출연. 13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2만5000원(청소년 1만5000원). 02-3673-5580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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