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일주일을, 히드로 다이어리/알랭 드 보통 지음·정영목 옮김/214쪽·1만800원·청미래
공항 안에는 모든 것이 있다.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이 시간을 보내는 각종 상점, 수송 대기 중인 물자들, 기내식을 만드는 공장, 격납고, 항공사 사무실과 공항 직원들. 물론 이 모든 곳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제한돼 있다. 그런데 한 작가가 특권을 얻었다. ‘공항 상주작가’라는 독특한 지위로 일주일간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 중 하나인 런던 히드로 공항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 주인공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이다.
그는 공항 소유주로부터 받은 뜻밖의 제안을 숙고 뒤 승낙한다. ‘상업세계와 예술세계는 불행한 동반관계’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작가는 ‘푸드코트를 관리하고 지구 평균 기온을 높이는 데 일조할 소지가 큰 테크놀로지를 운용하며, 불필요한 여행을 하도록 부추기는 데 솜씨를 발휘하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초청을 떨쳐내기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공항은 작가에게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의 작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두 주인공이 만난 장소가 공항이었다. 또한 현대의 공항이란 ‘테크놀로지에 대한 우리의 신앙부터 자연 파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상호 관계성에서부터 여행을 로맨틱하게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단 하나의 장소였던 것이다.
작가는 일주일간 공항 경계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고용주와의 계약조건을 준수하며, 양손 가득 선물 가방을 들고 고향을 찾는 사람들, 고급 라운지에 모인 자산가들, 모든 이를 잠재적 테러범으로 간주하는 보안요원들 등 다양한 이들을 만난다. 그러면서 그의 수첩은 “상실, 욕망, 기대의 일화들, 하늘로 날아가는 여행자들의 영혼의 스냅사진들”로 가득 찬다. 무엇보다, 작가는 공항이 사람들에게 설렘을 주는 까닭에 대해 이렇게 통찰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다. 우리가 읽은 책, 일본의 절, 룩소르의 무덤, 비행기를 타려고 섰던 줄,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 등 모두 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행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과 동일시하는 일로 돌아간다…우리는 짐을 싸고, 희망을 품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회복한다. 곧 다시 돌아가 공항의 중요한 교훈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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