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속의 근대 100景]<72>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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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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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총독부 완공
경복궁 정면서 가려
70년 지나서야 철거

《“조선 와 보니 첫재 인상은 흰 옷 입은 어린 아희들의 얼골이 금직이 고흔 것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띠운 것은 총독부 신\사(新廳舍)가 조선의 조흔 건축물들을 가리워 노흔 것이엇섯슴니다. 유감으로 생각함니다.” ―동아일보 1926년 11월 29일자》

일제가 10년간의 공사 끝에 1926년 완공한 조선총독부 청사. 대한민국 건국 후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으로 쓰이다 1996년 완전 철거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일제가 10년간의 공사 끝에 1926년 완공한 조선총독부 청사. 대한민국 건국 후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으로 쓰이다 1996년 완전 철거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26년 11월 28일 새벽. 미국 뉴욕 ‘레몬드 휜트콤’사가 주최한 세계 관광단 330명이 여객선 ‘카린틔아’호를 타고 인천항을 찾았다. 임시열차로 경성에 온 이들은 자동차와 인력거를 나눠 타고 창덕궁 경복궁 등 건축물과 시내를 구경한 뒤 오후에 중국으로 떠났다. 뉴욕화재해상보험회사 사장 스미드 씨의 소감을 인용한 동아일보 기사 제목은 “경복궁 압 총독부가 눈에 몹시 거슬린다”였다.

스미드 씨의 눈에 거슬렸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1926년 10월 1일 완공됐다. 1916년 6월 25일 착공했으니 일제가 10년이란 기간을 쏟아부은 대공사였다. 용지 면적 9만9000㎡, 연면적 3만1790㎡의 5층 건물로 설계에만 4년이 걸렸다.

조선호텔과 서울역을 설계한 독일 건축가 게오르크 데 라란데가 만든 초안을 그의 사후에 일본인 노무라 이치로, 구니에다 히로시가 마무리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 위에 동대문 밖 종로구 창신동 채석장에서 가져온 화강암을 씌워 마감했다. 이 공사로 인해 경복궁 흥례문, 유화문, 용성문, 협생문, 행각, 영제교 등이 철거됐다.

서울시청 구 청사인 덕수궁 앞 지하 1층, 지상 3층 경성부청 건물도 1926년 준공됐다. 서울시의회가 의사당으로 쓰고 있는 옛 부민관은 경성부가 1935년 12월 경성의 부립극장으로 세운 건물이다. 2001년 6월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으로 개관한 일본 제일은행 경성지점은 1912년 다쓰노 긴코가 설계해 세운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이다. 6·25전쟁 때 파괴된 것을 1958년 보수해 한국은행 본점으로 썼다.

이 시기 일제가 세운 건물은 모두 유럽의 고전적 건축 양식을 따랐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대규모 관공서 건축의 근엄한 양식주의를 통해 식민지 지배자의 권위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1927년 4월 30일 종로구 세종로에 사옥을 세우고 16면의 낙성 기념호를 발행했다. 발행인 김성수는 “조선총독부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광화문 앞 네거리에 사옥을 지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철근콘크리트와 벽돌을 혼합해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올렸다. 오늘날 이 건물에는 일민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광복 후 미군정 청사, 정부 청사로 쓰이다가 6.25전쟁 때 대파됐다. 다시 복구해 1982년까지 중앙청이라는 이름의 정부 청사로 쓰다가 1986년 8월 21일부터는 박물관으로 개조해 사용했다. 1995년 8월 15일 시작한 철거작업이 마무리된 것은 1996년. 1915년 경복궁 안에 세워졌던 총독부박물관도 이때 같이 사라졌다. 지금은 총독부 건물의 중앙 돔 위에 솟았던 돌 첨탑만이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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