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세 가지 질문을 동반한다. 먼저 그 ‘춤’은 어떤 춤인가. 홀로 추는 독무(獨舞)는 결코 아니다.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이 함께 불렀던 ‘칙 투 칙’의 가사처럼 남녀가 뺨을 맞대고 ‘천국에 와 있다’고 느끼며 추는 그런 춤이다. 감상용 춤도 아니다. 객석에 앉아서도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춤이다.
그럼 구원받을 ‘너희’는 누구인가. 현대도시 속에서 익명으로 떠도는 메마른 영혼들이다. 자기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누군가의 배우자로 존재하는 이들. 화려한 이력과 외형적 성공의 이면에 골수에 사무치는 외로움을 껴안고 사는 이들. 수줍고 부끄러워 자신의 꿈 또는 욕망을 감추기에 급급한 이들….
마지막으로 ‘구원’은 어떻게 가능한가. 춤을 통해서? 아니다. 환상을 통해서다. 춤만으로는 그 영혼의 허기를 메울 수 없다. 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그것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매개체일 뿐이다.
‘컨택트’는 독립된 3개의 에피소드로 엮여 있다. 10분 분량의 첫 에피소드 ‘그네타기’는 귀족 여성이 그네 타는 모습을 그린 프랑스 풍속화가 프라고나르의 ‘그네’에서 영감을 얻은 성적 환상을 그려낸다. 다음 30분 분량의 ‘당신 움직였어?’는 남편에게 염증을 느낀 중년 여성의 발칙한 환상을 담았다. 마지막 50분 분량의 ‘컨택트’에선 자살을 기도하던 독신 남성이 ‘환상 속 그대’를 만나 생의 의욕을 되찾는다.
외형적으론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3개의 에피소드는 중층으로 연결돼 있다. 18세기 성풍속을 풍자한 1장은 난(亂)하다. 그네를 타는 남녀의 기예에 가까운 춤사위는 곧 노골적 성행위를 나타낸다. 당연히 관객은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거기엔 뮤지컬의 초창기 그 성인 버전으로 각광받았던 ‘벌레스크(burlesque)’의 전통이 녹아 있다.
1950년대를 무대로 한 2장은 관객에게 가장 편안하게 다가선다. 억압적 남편에게서 정숙함을 강요받는 아내(이란영)의 반란. 지금도 아침 TV 드라마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멜로드라마 문법에 충실한 이야기 아닌가. 안무가 수전 스트로먼은 이 에피소드의 춤을 부르주아 문화를 대표하는 발레 중심으로 꾸몄다.
이런 예술사적 맥락을 따를 때 현재의 뮤지컬을 다룬 3장이 가장 창의적인 것은 필연이다. 뉴욕 여피족의 고독과 사랑을 담은 이 에피소드는 관능적 춤사위 못지않게 농염한 몸짓언어로 객석을 전율케 한다.
처음엔 어색하고
때론 편안하고
결국엔 환상적인
3색 일상… 3색 몸짓
“빛이 있으라”라는 대사에 맞춰 노란 드레스의 여인(김주원)이 등장할 때 환상적 조명과 뇌쇄적 눈빛 그리고 관능과 우아함이 함께 숨쉬는 일거수일투족이 곧 춤이다. 맨해튼 아파트 무대세트와 뉴욕 뒷골목 재즈바 세트의 전환마저 춤사위의 일부로 녹여낸 무대연출도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일상의 춤을 예술로 승화한 스트로먼의 안무는 명불허전이었다. 10년 만에 안무가에서 춤꾼으로 돌아온 이란영 씨가 안정적 무대를 선보였다면 발레가 아닌 춤과 연기에 처음 도전한 김주원 씨는 압도적 무대를 펼쳤다. 3장의 남자주인공 마이크 와일리 역의 장현성 씨의 춤은 아쉬움이 남지만 탄탄한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잘 잡아줬다.
무엇보다 존 와이드먼의 대본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대본은 극무용의 예술사적 흐름뿐 아니라 무의식의 심층을 3단계로 해부한다. 1장은 사람들이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환상일 수 있음을 폭로함으로써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다. 2장은 그 환상이 ‘나는 욕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의해 작동함을 보여준다. 아내의 환상은 모두 그 직전 남편이 금지시킨 것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3장은 환상이야말로 현실의 잔여물로 재구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와일리의 현실과 환상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공연이 끝날 무렵 와일리도, 관객도 깨닫는다. 그의 환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파트 자동응답기 속 짜증나는 목소리의 주인공들이었음을.
세 에피소드를 하나로 잇는 가시적 소품도 있다. 공연을 감상할 관객을 위해 퀴즈로 남겨두니 직접 찾아보시기를. 4만∼10만 원. 17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02-2005-0114), 1월 22∼31일 경기 고양 아람누리(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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