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구미'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인 웹툰 작가 정구미 씨(31·2006년 정상미로 개명). 그는 일본에서 '키무라 구미'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키무라 구미'가 '정구미'가 된 때는 사춘기가 시작되던 1992년 초등학교 졸업 무렵이다. "사실 너는 한국인이다. 중학교는 민족학교인 교토 한국 학원으로 가라." 아버지의 느닷없는 통보에 작가는 자신의 뿌리를 처음 알았다.
그동안 일본인인 줄 알았던 아버지는 재일 교포 2세였다. 어머니는 경남 진해에서 시집 온 한국 여성이었기에 정 작가는 그동안 자신을 혼혈아로만 생각했었다. 하루아침에 온 가족이 '오리지널' 한국인이 된 셈이다.
어린 여동생은 충격을 받고 잠시 정신적 공황을 겪었다. 하지만 정 작가는 무덤덤했다. 일본인 동네에서 일본인처럼 살았기 때문에 '재일 교포'가 된다는 게 뭔지 잘 몰랐다. 동네 친구들에게 한국인이라는 것을 밝혔지만 "특이하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재일교포 2세들은 국적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지만 3세대들은 그렇게까지 차별을 몸으로 느끼지는 않아요. 차별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 한국말을 모르는 아버지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해 한국말도 배우지 못한 아버지는 두 딸을 민족학교에 보내면서 택시에 부착했던 자신의 이름표에서 '키무라'를 지우고 '정'이라는 성을 썼다. 정 작가는 아버지의 배려로 민족학원에 다니면서 한국어를 조금씩 구사하게 되었고, 한국 역사도 공부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차별을 많이 받은 세대라서 일본 이름을 썼어요. 재일 교포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사신 것 같아요. 자식들을 민족학교에 보내고 참 좋아하셨어요. 당신도 한국 이름으로 잠시 사셨죠. 그러다가 다시 일본 이름으로 돌아갔어요. 아무래도 일본 이름이 살기에 편하니까…."
가끔 어머니가 한국 친척에게 한국말로 전화하는 것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던 정 작가는 2000년 한국말을 배우러 한국에 왔다. 그러다가 편하고 재밌는 한국 사람들에게 매료돼 아예 눌러앉았다. 일본 오사카 예술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한 경험을 살려 2001년 외국인 특례로 홍익대 시각디자인 학과에 입학해 2005년 2월 졸업했고 만화가로 진로를 바꿨다.
▶ 만화는 서비스. 독자 댓글 모조리 읽는다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4년 가을 졸업전시회를 준비하면서부터다. 전시회 작품을 만화로 꾸며 홈페이지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재일교포로서 한국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이나 일본에 있는 가족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얼떨결에 만화로 된 일본 여행서 '오사카·고베·교토'를 냈고, 일본의 세계적인 캐릭터 기업 반다이에서 잠깐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노란 구미의 돈까스 취업'을 펴냈다. 포털 사이트에도 진출해 '세 개의 시간', '한국·일본 이야기' 등을 연재했다.
인기의 비결은 '독자 댓글을 모조리 읽어 본다'는 것. 정 작가는 팬들의 반응에 예민한 편이다. 만화도 일종의 서비스 산업이기 때문에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는 것이 정 작가의 지론이다.
"네이버에 '세 개의 시간'을 연재할 때, 주인공들이 학교 축제 때 코스튬 플레이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독자들이 원하는 만화 속 캐릭터로 변신시켰죠.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난무하면 '오덕'(만화광 폐인을 뜻하는 일본말 '오타쿠'의 한국식 변형)이 아닌가 걱정스러워 팬 카페에 미리 물었습니다. 괜찮다는 평가를 받고 과감하게 시도했어요."
'세 개의 시간'도 1부는 무라카미 하루키 식으로 진지하게 주인공의 내면을 깊숙이 묘사했다가 지루하다는 평을 보고 바로 빠른 전개로 넘어갔다. 덕분에 2부는 '재밌다'는 평가를 받았다.
왜 그렇게 독자 의견에 연연해할까.
"모르니까요. 저는 한국인들의 감성을 알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걸 챙길 수밖에 없어요. 아직도 배울 게 많아요."
'부모의 나라' 한국은 재미난 일 투성이라고. 가장 웃긴 경험은 '생일 빵'이다. 생일이 되면 때린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 물론 '거절권'이 있기에 생일 빵은 재밌는 일이라고.
남자들이 하는 군대 얘기도 재밌었다. 정 작가는 같은 만화 동아리 회원이었던 복학생과 결혼했다.
▶ 내 남편 '블랙남자'
정 작가의 남편은 웹툰에도 등장하는 '블랙남자' 윤희승 씨(30)다. 검정 색 옷을 즐겨 입고 성격도 블랙이라서 블랙 남자란다.
블랙남자는 기념일에 하얀 국화꽃을 주는 그런 남자다. 정 작가는 '나랑 같이 무덤까지 가자는 건가?'라고 잠시 헷갈렸단다. 정 작가 머리 속에서 '욘사마'(배용준)로 대변되는 한국남자는 기념일에 장미꽃을 주는 로맨틱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블랙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꽃을 준다.
"일본 남자는 열정적이지 않아서 남편이 집까지 바래다준다든가, 기념일을 챙기는 모습이 생소했어요. 일본 여자들은 로맨틱한 걸 원하면서도 실제로 남자가 그렇게 하면 부담감을 느껴요. 받은 만큼 나도 해줘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보답했더니 남편이 자기를 싫어하느냐고 오해했어요."
남편에 대해 얘기하는 내내 정 작가에게선 일본 여성 특유의 애교가 묻어났다. 정 작가는 추석 음식을 주겠다는 말에 남편의 자취방에 놀러갔다가 첫 사랑 고백을 받고 5년간 열애끝에 2008년 3월 결혼했다.
▶ "우리 딸, 5㎏만 살찌게 해줘!"…시어머니의 '발 마사지'
잘 키운 딸을 한국으로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정 작가의 언니가 형부와 집에 인사하러 왔을 때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결혼식 때도 우셨다. 평소 개그와 술밖에 관심이 없는 아버지가 울었다.
그러나 웬걸. 정 작가의 결혼 선언에 아버지는 "어차피 딸은 키워봤자 다 떠나. 결혼하자는 남자가 있을 때 가라"고 담담히 말했다. 시집가는 딸이 오히려 섭섭했다.
상견례 때 아버지가 사위에게 당부한 말씀도 간단했다. "우리 딸, 5㎏만 살찌게 해줘!"였다. "비쩍 마른 신부는 불쌍해서 못 봐 주겠다"는 게 아버지의 말씀이지만, 속내는 우리 딸 마음 편하게 살게 해달라는 일종의 '압력'이 아니었을까.
결혼식은 한국 전통 혼례로 치렀다. 부케 대신 닭을 던졌다. 일명 '부닭케'다. 결혼을 앞둔 친구가 '몸을 날려' 부닭케를 잡았다. 그 친구도 성공적인 전통 혼례식을 올렸다고 한다.
현재 남편 블랙남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미대 출신 게임 캐릭터 디자이너가 공무원으로 진로를 바꿀 때까지는 고민이 많았을 터. 원래 구체관절 인형을 만드는 장인을 꿈꾸던 남편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택하기로 했다. 정 작가는 그런 남편의 마음 씀씀이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블랙남자와 결혼하면서 정 작가에겐 또 한 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생겼다. 사실 각오하고 한국으로 시집을 왔는데 시집살이가 듣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는 정 작가. 시어머니는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공무원 시험공부를 해서 며느리 네가 고생한다'며 며느리의 발을 손수 마사지해 주셨다.
"그 모습을 보니 되게 슬펐어요. 이렇게 안 사셔도 되는데…. 평생 자식에게 해주기만 하시고. 제사도 거의 혼자 다 하시고, 밑반찬도 해다 주세요."
▶ 차기작은 국제 사회 유목민의 삶을 다루고 파
정 작가는 차기작으로 미국에 이민 간 교포 2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구상 중이다. 모델은 정 작가의 아버지. 결혼 후 아버지와 술을 마시며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됐을 때, 아버지는 한국을 동경하지만 한국에서 살 수는 없는 처지라서 딸을 민족학교에 보냈다고 고백했다.
"교포 1세대들은 그나마 고국의 뿌리가 있기 때문에 나아요. 2세들은 혼란스럽고 3세가 돼야 비로소 그 사회에 적응하게 되죠. 저희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어떤 사회든 처음에는 외국인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한국에 와서 혼혈아, 교포 이민자를 많이 만났어요. 그러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어요. 왜 그렇게 열등감을 가지고 사셨는지를요."
택시운전기사인 아버지는 둘째 딸인 정 작가가 유명세를 탈수록 자신의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린다고 했다. 한번은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의미를 알겠다. 너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산 것 같아. 내 삶의 이유는 너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정 작가는 웹툰을 연재하면서 이민자, 해외 유학생들에게 가장 큰 지지를 받았다. '세 개의 시간' 주인공 히나는 일본인 한국인 혼혈아이고, 성훈이는 아버지가 외교관이라서 해외를 방랑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의 메일 함에는 "내게는 뿌리가 없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한국을 알고 있지만, 자식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중학생 때 캐나다에 이민 갔다가 공부를 잘해서 대학까지 나왔는데 한국에 돌아갈 수가 없다. 의식이 다르기 때문에 적응이 어렵다"는 이메일이 쌓여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은 이민을 많이 나가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어딜 가더라도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순 없어요. 정착할 곳을 찾아다니는 유목민 같습니다. 그런 그들의 삶을 만화에 담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정 작가의 예명은 '노란 구미'일까.
"노란색은 신호등의 중간색이죠. 어딘가 치우치지 않은 색 같아요. 그리고 노랑이 들어가면 어떤 색이든 밝아집니다. 그래서 전 노란색이 좋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