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가 흔하지 않았던 60~70년대 ‘뻥튀기’는 최고의 군것질 중 하나였다. 장구통처럼 생긴 시커먼 뻥튀기 기계를 짊어지며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는 ‘뻥튀기 아저씨’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80년대 까지만 해도 장터나 동네에 어김없이 찾아왔던 반가운 ‘손님’ 뻥튀기 아저씨를 이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2010년 서울 노원구 중계동. 영하 10도의 한파 속에도 “뻥이요~”를 외치는 박용배 씨(60). 박 씨는 35년째 새하얀 연기를 뿜으며 이곳 주민들에게 ‘고소함’을 전달해 주고 있다.
기상 관측이래 최고 폭설이 내린 올 겨울 박 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노원구 일대를 돌며 뻥튀기를 팔고 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뿐 손님 하나 없는 아파트 단지 도로가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그는 연신 뻥튀기 기계를 손으로 돌리고 있다.
박 씨는 손님이 가져 온 쌀을 넣고 밀폐한 뒤 불을 지펴 서서히 장구통 모양의 ‘본체’를 가열했다. 적당한 압력이 도달했는지 본체의 뚜껑을 뺀 후 가열을 멈췄다. 뚜껑을 열자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곡물이 부풀어 올랐다. 조금 뒤 박 씨는 “자~ 귀막아주세요, 뻥 합니다요~ 뻥이요~”라고 외쳤다. 그는 “압력차로 ‘뻥~’하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뻥튀기라고 불리게 된 것”이라며 뻥튀기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
박 씨는 결혼 후 본격적으로 뻥튀기 장사를 하기 시작해 두 딸을 시집보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에 옆집 할아버지 일을 도운 게 첫 시작이었다”라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결혼 후에도 이것저것 해봤는데 다 잘 안 돼 이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 모습 그대로 뻥튀기 장사를 하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실제로 요즘은 손잡이를 돌리는 대신 모터로 작동하고 자동 타이머가 작동해 10여 분 후면 쌀, 옥수수, 강냉이 등이 튀겨진다.
박 씨가 보유한 뻥튀기 기계는 무려 7대나 된다. 그는 “장구통 같이 생긴 솥단지만 성하면 바꿀 이유가 없는데 그게 압력으로 인해 자꾸 망가진다”며 “그동안 고장 난 것들은 나와 일생을 같이 한 가족과도 같아서 버릴 수가 없다”며 애지중지 다룬다고 말했다.
그는 단골손님을 위해서라도 이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하루 벌이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 맛을 잊지 못해 이사 간 손님들이 멀리서 오기 때문이다. 그는 “남양주, 구리 등 전국 곳곳에서 가끔씩 찾아오는데 혹시라도 제가 없으면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손님 한 분 한 분을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 고마움 때문에 절대로 그만 둘 수가 없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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