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을 여는 젊은 국악인들]<2>대금연주자 겸 작곡가 차승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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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4일 03시 00분


“詩와 만나면 아름다운 선율 절로 떠올라”

좌충우돌 여행, 만화 그리며 치열한 20대 보내
한국적 情恨보다 관객과 소통하는 무대가 꿈

차승민 씨는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노래를 쓰고 싶고, 관객과 같은 눈높이의 무대를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미옥 기자
차승민 씨는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노래를 쓰고 싶고, 관객과 같은 눈높이의 무대를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미옥 기자
2009년 8월 21일 서울 종로구 북촌창우극장에서 열린 ‘2009 천차만별 콘서트’ 첫날 공연. 가야금과 기타, 노래가 어울리는 ‘프로젝트 시로(詩路)’의 무대였다. 얼핏 뉴웨이브풍으로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싶더니 곧 아득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락이 객석을 차분히 감싸 안았다. 사람들의 눈길은 대금을 부는 리더에게 쏠렸다. “몇 년 전 TV에서 봤는데”라는 속삭임도 들렸다.

“4년간의 공백이었죠. 지난해 문득 ‘내가 20년 동안 해온 게 국악인데’라는 그리움 같은 게 밀려들더군요. 대학 때부터 작곡했던 네 곡을 들고 천차만별 콘서트에 무작정 신청했습니다. 며칠 뒤 ‘개막 공연을 하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대금연주자 겸 작곡가 차승민 씨(30). 그는 치열한 20대를 보냈다. 서울대 국악과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후 친구 둘을 ‘꾀어’ 6개월 동안 남아시아와 유럽 20여 개국을 여행하며 길거리 공연을 했다. 오늘날 국악 가수로 활동하는 이안도 셋 중 하나였다. 세 사람의 좌충우돌 여행기는 ‘아주 특별한 소리여행’이라는 4부작 다큐멘터리로 2003년 TV에 방영됐다.

그 뒤 그의 끼는 럭비공처럼 튀었다. 개인 홈페이지에 만화를 그려 올려 ‘인터넷만화가’로 이름을 얻었다. 만화를 곁들인 여행기도 출판했다. 그의 끼를 알아본 출판사들이 일러스트 작업을 제의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함도 곁들이게 됐다. 졸업 연주는 그가 국악과 한순간 작별하는 계기가 됐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무대공포증 때문에 한순간에 무너졌어요. 자존심이 상했죠. 아, 나는 체질이 아니구나….”

결혼하고, 아이 둘을 손이 덜 갈 정도로 키워놓았더니 그토록 자신을 괴롭힌 국악이 다시 마음속에 찾아왔다. 천차만별 콘서트 측에서 선뜻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은 뒤 모교인 서울대 국악과 조교에게 ‘똘끼’ 있는 후배들 좀 찾아 달라고 부탁해 7명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시로’를 만들었다. “왜 똘끼냐고요? 실력은 다들 비슷해요.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죠.” 천차만별 콘서트 개막공연에 이어 ‘2009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에서 월드뮤직상을 수상했다. 외국 청중의 마음에도 가 닿을 접점이 많음을 인정받은 것. 여행과 예술을 접목하는 TV 프로그램에도 잇따라 출연했다. 그 덕분에 요즘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많아졌다며 그는 웃음을 지었다.

그와 음악이 만나는 사이에는 언제나 ‘시’가 있다. 새 곡을 만들기 위해 늘 시집을 들여다본다고 했다. “운율이 있고 심상(心想)이 확 드러나는 시를 만나면 선율이 떠오르죠. 하이네나 정지용, 김소월의 시 중에 간결하면서도 짙은 심상이 들어있는 시를 많이 만나게 됩니다.”

국악의 세계로 돌아오면서 그가 다짐한 일 중 하나는 이른바 ‘한국적 정한’이라고 알려진, 애조가 드러나는 국악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 그래서 창작가들이 즐겨 쓰는 국악 조성은 피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첫 몇 소절 동안은 ‘국악에 바탕을 두었구나’라고 이내 알아차리기 힘든 노래도 많다.

그는 앞으로 ‘어린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를 바탕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문학과 소통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고, 거기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채워드리고 싶습니다. 갤러리든 카페든, 객석과 소통하는 무대를 많이 만드는 게 꿈이에요.”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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