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카페]홍콩의 예비신부 친구야, 걱정 말고 신혼준비 즐겨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5일 03시 00분


“나 축하 받을 일 생겼어.” 며칠 전 인터넷 메신저에서 만난 홍콩인 친구가 갑자기 말을 걸었습니다. 2001년 홍콩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을 10년 가까이 e메일과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이어가고 있는 친구죠. 홍콩에 있는 일본계 전자회사 직원인 그는 은행에 다니는 홍콩인 남자친구와 함께 지난해 11월 한국으로 겨울여행을 와서 저도 짬을 내 이 커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축하 받을 일은 짐작대로 결혼 소식이었습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자친구가 청혼을 했다더군요. 평소 “남자친구가 언제쯤 프러포즈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하던 그를 잘 알고 있기에 축하 인사를 건넸습니다.

하지만 감사의 인사와 남자친구 자랑도 잠시뿐. 그는 이내 결혼 준비 걱정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신혼집 마련. 홍콩 도심에서 30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66m2남짓한 아파트도 우리 돈 3억 원은 있어야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피로연 때 제공되는 음식 가격도 12명이 앉는 테이블 하나당 100만 원 가까이 한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나마 괜찮은 식당은 이미 1년 반 치 예약이 끝났다고 하더군요.

그는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중국 자본이 계속 홍콩으로 유입되면서 통화량이 팽창했고 부동산 가격 등 물가가 뛰면서 홍콩 젊은이들이 결혼 준비에 예전보다 더 많은 돈이 들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친구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지난해 5월 마이너스 수익률을 면치 못하던 ‘중국 펀드’를 해지해서 신혼집 전세자금을 마련했던 저의 결혼 준비과정이 떠오르면서 금세 동병상련의 심정이 되더군요. 1년여의 시간을 두고 서울과 홍콩에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는 커플들을 훼방 놓는 중국 경제의 막강한 영향력도 실감했습니다.

결혼 선배로서 조언해 달라는 친구의 얘기에 “결혼을 준비하면서 내려야 할 수많은 결정을 두 사람이 즐거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막상 저 자신은 회사에서 바쁜 부서에 있다는 핑계로 결혼 준비 대부분을 아내 몫으로 떠넘겼던 일이 생각나 살짝 양심이 찔리긴 했지만 말이죠.

결혼식은 참석 못해도 축하의 e메일은 보내야겠다 싶어 결혼식 날짜를 물었더니 “2011년 11월쯤 좋은 날을 받으려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아직 2년이나 남은 결혼식을 벌써 걱정하고 있었던 겁니다. 부디 지난겨울 만났을 때마냥 사람 좋아 보였던 그의 남자친구가 약혼녀와의 결혼준비 과정을 즐길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누구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않도록.

우정열 산업부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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