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프로야구 ‘져주기 음모론’ 모티브 종교적 주제는 당분간 미뤄둘 것”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1월 21일 03시 00분


소설 ‘천하무적 불량야구단’ 펴낸 목사 소설가 주원규 씨

프로필 끝에 적힌 이 작가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동서말씀연구회’라는 제목이 뜬다. 소설 작업과 관련된 내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한복음 해독’ ‘마태복음 강해’ 등의 카테고리뿐이다. ‘주소를 잘못 입력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의 독특한 이력이 떠오른다. 목사이자 소설가인 주원규 씨(35·사진)다.

지난해 ‘열외인종 잔혹사’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장한 그가 신작 야구소설 ‘천하무적 불량 야구단’을 펴냈다. 소설은 드라마적 요소를 빠짐없이 갖춰 속도감 있고 흡인력 있게 읽힌다. 헬라어, 히브리어 원전으로 성경을 강독하며 실험적인 목회 활동을 하는 젊은 목사와 냉혹한 프로야구의 세계를 경쾌한 필치로 거침없이 그려낸 신인작가가 같은 인물이라니. 그러나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보통의 한국 남자들처럼 야구를 광적으로 좋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프로야구 스타 투수 출신 김인석 감독이 만년 하위팀 삼호 맥시멈즈를 이끌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다. 선수 시절부터 과격한 언동으로 ‘불량선수’로 불렸던 그는 감독이 되어서도 심판과의 잦은 몸싸움과 폭력적인 훈육, 승리 만능주의를 벗어던지지 못해 언론과 팬들로부터 비호감 불량감독으로 인식된다.

그러던 중 모기업의 주력 계열사 삼호철강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오며 구단까지 매각 위기에 처하고 삼호철강 인수에 관심을 보인 대기업이 인수를 대가로 ‘져주기 게임’을 제안해 온다. 대쪽같은 성품의 김 감독은 단칼에 거절하지만 주요 선수들은 마음이 기운다. 그는 내부의 적을 끌어안은 채 외부의 적과 대적해야 하는 위기 상황을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극복해 간다. 작가는 “한때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불거졌던 ‘져주기 게임’ 음모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며 “순수한 열정으로만 승부가 나야 하는 스포츠에 이해관계가 얽히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썼다”고 말했다.

캐릭터의 생동감은 소설을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소설 속에는 실제 한국 프로야구 팀의 내력과 전현직 감독, 선수들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한다. 작가는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 금방 감을 잡으실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 남다른 이력의 작가는 창작력도 왕성해서 이미 ‘열외인종 잔혹사’ ‘천하무적 불량 야구단’에 이은 차기작 집필이 끝난 상태다. 이른바 ‘분노’ 3부작이다. 언젠가는 신학과 문학을 결합해 보고 싶지만 “종교적인 테마를 전면적으로 다룰 경우 전형적인 주제만 나열하게 될까봐 아직 시도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우선은 세속성(?)을 추구하면서 보편적인 인권문제나 사회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작품을 구상해 나가고 싶습니다.” 작품만 보면 타고난 이야기꾼 같은데, ‘세속성’이란 어휘는 목사다웠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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