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나도 오븐의 주인”이라고 선언한 홈베이커 남편들. 서석인 씨(위)는 만삭의 아내 김부용 씨의 영문 이름 이니셜을 새긴 초콜릿 케이크를 구웠다. 아내 이혜종 씨에게 딸기 샤를로트를 만들어 선물한 회사원 이재준 씨(아래)는 “9개월 난 아들이 내가 만든 과자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하는 날까지 홈베이킹 수련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오븐은 오랜 세월 아내의 전유물이었다. 이 땅의 많은 남편에게 오븐은 쓰임 자체가 관심이 없거나 설령 쓰임새를 알더라도 미국의 로맨틱 영화에 나오는 남성이나 쓸 것 같은 별로 친하고 싶지 않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변했다. 홈베이킹(Home Baking)이 취미라고 당당하게 선언한 남성 집단의 등장으로 오븐은 아내와 남편이 공유하는 살림살이로 바뀌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의사(레지던트 4년차)인 서석인 씨(33)는 한 달에 하루 남짓한 휴일이 돌아오면 오븐의 주인으로 변신한다. 내달 출산을 앞둔 만삭의 아내 김부용 씨(32)에게 선물할 쿠키를 굽기 위해서다. 밀가루, 계란, 우유 반죽과 한참을 씨름한 끝에 마침내 오븐에서 결혼 전 발레리나였던 아내의 모습을 본 뜬 쿠키와 곧 태어날 아기에게 먹일 젖병 모양의 쿠키가 나왔다. 쿠키를 받아 쥔 김 씨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핀다.
서 씨가 홈베이킹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지난해 아내와 함께 홈베이킹 스쿨에서 특강을 들으면서부터였다. 원래 요리에 관심이 있었던 그였지만 “아내와 함께 홈베이킹을 배우면서 먹는 즐거움보다 큰 만드는 즐거움에 눈떴다”고 말한다. 홈베이킹 지식은 때로는 인테리어 기술로도 변신한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서 씨는 아내와 함께 만든 각양각색의 쿠키에 장식용 고리를 달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기도 했다.
‘쿠키 굽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에는 진한 초콜릿 케이크 같은 달콤함이 묻어난다. 김 씨는 “임신 초기 입덧이 심할 때 남편이 만들어 준 호두파이를 먹고 기운을 차리곤 했다”며 “짧은 휴일에 좋아하는 낮잠까지 반납하고 오븐 앞에 있는 걸 보면 안쓰럽지만 남편이 집에서 함께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미 서 씨는 나중에 태어날 아이의 돌 케이크를 자신이 직접 만들어 준다는 계획도 세워 놨다.
기업의 해외무역 파트에서 일하는 회사원 이재준 씨(33)도 빵 굽는 남자다. 3년 전 결혼한 아내 이혜종 씨(30)와의 사이에 9개월 된 아들을 둔 이 씨의 목표는 아들이 ‘아빠가 만든 과자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말을 듣는 것.
처음에 아내 손에 이끌려 홈베이킹 스쿨의 특강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설탕과 소금을 혼동해 짜디짠 컵케이크를 만들기도 했던 이 씨지만 몇 차례의 특강을 통해 어엿한 홈베이커로 거듭났다. 요즘은 아내와 함께 만든 쿠키를 맛본 회사 동료들에게 “어디서 사온 쿠키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쿠키 선물을 받은 양가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들도 “돈을 받고 팔아도 되겠다”는 칭찬을 해 줄 정도. 이 씨 부부는 요즘 카페나 식당에서 후식으로 맛있는 케이크나 쿠키가 나오면 어떤 재료와 조리법을 썼을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아내 이 씨는 “고생해 만든 쿠키를 맛보는 재미도 있지만 바쁜 중에도 가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앞으로도 계속 홈베이킹을 배우려고 한다”고 말한다.
마치 홈베이킹교의 열렬한 신도라도 된 듯한 이들의 모습에 슬쩍 ‘딴지’를 걸어보고 싶어 “제과점에서 사는 편이 시간과 비용 모두 절약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바로 “홈베이킹의 매력을 제대로 알게 되면 그런 소리가 안 나온다”는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자극적인 맛과 색으로 사람들의 입맛과 눈길을 사로잡으려 아우성치는 음식의 홍수 속에서 직접 믿을 수 있는 재료를 골라 가족의 입맛에 맞춰 정성을 담아 구운 빵과 과자의 가치는 시간이나 비용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 오늘도 남편이 오븐 앞에 서는 이유다.
글=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디자인=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초보 홈베이커를 위한 팁 쿠키 케이크 ‘원포인트 레슨’ 도움… 기구보단 재료에 욕심을
막상 홈베이커를 선언했어도 무엇부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학이 어려운 홈베이킹은 비싼 재료가 들어간 반죽을 몇 번 태우고 나면 속이 상해서 손에서 놓아버리기 십상이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바게트, △△△베이커리의 도움 없이 내가 직접 만든 케이크로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홈베이킹 초심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망라했다.
○ 4, 5주 과정 홈베이킹 스쿨도 많아
홈베이킹과 가장 쉽게 친해지는 방법은 가까운 백화점이나 마트 문화센터의 홈베이킹 강의를 듣는 것. 회당 1만∼2만 원의 비교적 저렴한 수강료로 간단한 쿠키나 케이크를 만드는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이들 문화센터 강의는 별도의 실습 없이 강사의 시연만으로 끝나거나 실습이 포함된 경우 별도의 재료비를 받는 경우가 많으니 등록에 앞서 미리 확인해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허락하면 전문 홈베이킹 스쿨의 강의를 들어보자. 주 1회씩 4∼5주짜리 초보 과정만 이수해도 웬만한 쿠키나 케이크 등은 쉽게 만들 수 있다. 델리스키친(delices.co.kr), 슈크레(sucree.co.kr), 쿠키모리(cookiemori.co.kr), 레꼴두스(lecole-douce.co.kr), 브레드가든(breadgarden.co.kr) 같은 전문 스쿨에서는 회당 5만∼15만 원(재료비 포함)의 수강료로 맞춤형 실습이 가능하다.
초심자에게는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 핼러윈데이를 한두 주 앞두고 전문 스쿨에서 개설하는 1회 특강도 큰 도움이 된다. 이때는 연인이나 부부 수강생도 많고 직접 만든 케이크나 타르트를 싸 갈 수 있어 로맨틱한 데이트 소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기본기를 충실히 다졌다면 시중에 나온 관련 서적을 참고로 응용력을 키우면 된다. ‘김영모의 빵, 케이크, 쿠키(동아일보사)’, ‘프랑스 과자의 기초(베스트홈)’, ‘판타스틱 홈베이킹(기린출판)’, ‘정홍연의 홈베이킹 시크릿(비엔씨월드)’, ‘홈베이킹 백과사전(웅진리빙하우스)’ 등은 설명이 자세하게 돼 있어 초보 홈베이커가 ‘사부’로 삼을 만하다.
○ 저울-계량컵-거품기-밀대 등만으로도 가능
홈베이킹 초보가 자주 범하는 실수가 바로 제과·제빵 도구에 욕심을 내는 것. 도구를 완벽하게 갖춰야 맛난 과자가 나올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비용만 많이 들고 대부분 사용하지 않고 쌓아둘 가능성이 높다. 이지연 델리스키친 실장은 “저울과 계량컵, 거품기, 밀대 같은 가장 기본적인 도구만 있어도 간단한 쿠키 등을 만들고 홈베이킹의 재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다만 재료의 정확한 계량이 홈베이킹의 기본인 만큼 저울은 ‘필수’ 아이템이다. 눈금 저울보다는 디지털 저울이 좀 더 정확한 계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같은 이유로 눈금이 있는 계량컵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우유 같은 액체상태 재료의 양을 가늠할 때 필수적이다.
달걀이나 생크림 거품을 낼 때 쓰는 핸드믹서는 손거품기로 대체할 수 있지만 일단 구입해 두면 밀가루나 설탕 등이 들어가 무거워진 반죽을 섞을 때 매우 편하다. 반죽을 남김없이 말끔히 옮길 때 유용한 실리콘 재질의 알뜰 주걱도 한 번 구입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쿠키나 케이크 틀, 타르트 판 등은 한 종류만 구입해도 들어가는 재료를 바꿔가며 새로운 과자를 만들 수 있어 여러 개를 사지 않도록 한다. 이 밖에 밀대와 짤주머니 등도 미리 구입해 놓으면 좋다.
도구 욕심에 빠진 초보 홈베이커들이 쉽게 간과하는 것이 바로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이다. 우유, 달걀 등은 유통기한을 확인해 신선한 것으로 사고, 생크림이나 초콜릿은 각각 유크림과 카카오 함량이 높은 것으로 고르도록 한다.
바닐라빈, 판젤라틴처럼 동네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재료는 방산시장(서울 중구 주교동)이나 리치몬드상가(서울 강남구 대치동)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소량 주문도 할 수 있다. 방산시장이나 리치몬드상가 내 이진진(ejinjin.com), 카우24(cow2004.com), 케이크 프라자(cakeplaza.co.kr) 같은 전문 상점이나 이지 베이킹(ezbaking.com) 등 홈베이킹 전문 사이트에서도 재료나 도구를 구입할 수 있다.
○ 쿠키, 타르트는 초보도 만들기 쉬워
도구와 재료에 기술까지 삼박자를 갖췄으니 이제 실전에 나설 때다. 처음 몇 번은 오븐과의 싸움에서 판정패가 불가피하다. 조리법을 충실히 따랐는데도 재료가 타거나 설익었다면 아직 오븐과 친해지지 않았단 뜻이다. 오븐의 예열·조리시간을 조금씩 조절해 가면서 선생님이나 홈베이킹 책도 알려주지 못하는 우리 집 오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감각을 익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초보라면 간단한 쿠키부터 도전해 본다. 달콤한 맛을 좋아한다면 초코칩 쿠키가, 담백한 맛을 좋아한다면 오트밀 쿠키가 무난하다. 타르트도 제조법이 비교적 간단한 편이어서 한 번 성공하면 호두, 딸기, 바나나 등 계절에 따라 재료를 바꿔가며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타르트는 맛과 모양이 좋아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좋다. 잼을 발라서 차와 함께 먹으면 맛 좋은 영국식 비스킷 스콘도 비교적 품을 많이 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는 과자다. 케이크는 ‘아이싱(생크림 장식)’ 기술이 필요 없는 치즈 케이크나 초콜릿 케이크가 도전할 만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