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앞 章에서 공자는 ‘君子는 病無能焉이요 不病人之不己知也니라’라고 하여, 군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병으로 여기지,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병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의 이 章에서 공자는 위와 같이 말했으니, 둘 사이에 모순이 있지 않나 의심할 수 있다. 물론 공자는 제자들에게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투덜거리지 말고 내면을 닦아 자신을 충실하게 하는 專內實己(전내실기)의 공부에 힘쓰라고 거듭 촉구했다. 그런데 專內實己의 실상은 나의 善德과 善行을 남이 인정해 주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따라 제대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군자는 세상 마치도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음을 싫어한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의 疾은 病이나 患과 마찬가지로, 마음에 걸쳐 두고 염려함이다. 沒世는 몸이 沒한 이후를 가리키는 말로, 終身과 같다. 名不稱은 善德을 쌓고 善行을 하였다는 명성이 세간에서 칭송되지 않음이다. 王陽明(왕양명)은 이름이 실상과 合稱하지 않음이라고 보았으나, 취하지 않는다.
范祖禹(범조우)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학문을 하여 자신을 위하지,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지만 종신토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다면 善을 행한 실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군자의 立志는 개나 말처럼 이름 없이 사라져가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법이니, 만일 몸이 죽음에 따라 이름마저 사라져버린다면 어찌 이를 슬퍼하지 않겠는가. 사람으로서 몸이 다하도록 하나의 명성도 이루지 못하게 되면 죽어서도 또한 명성이 있을 수 없기에 군자는 오로지 자신을 슬퍼하는 것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거나 알아주지 않거나 하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 하지만 뜻을 세운 이래 몸이 다하도록 하나의 명성도 이루지 못한다면 나 자신이 서글플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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