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 ○의 급소를 맞은 상변 백 대마는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단 한 수에 대마의 목숨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것은 바둑의 무서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170수 이상 백이 잘 버텨왔다. 약간의 굴곡은 있었지만 중반 무렵 우변에서 곡예 타듯 패를 하면서 간신히 우세를 확보했다. 그런데 한번 삐끗했다고 나락으로 빠진 것이다.
여유 있게 살 수 있었던 상변 백 대마가 궁지에 몰린 것은 김형우 4단의 순간적인 방심 탓이다. 국면이 급속하게 흑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아무 희생을 치르지 않고 백 대마가 살 수는 없다. 구차하지만 백 88로 패를 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전에 무수하게 났던 패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흑의 꽃놀이패. 당연히 백에겐 팻감이 없다.
백 90의 팻감으로 한 번은 버텼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흑 93의 평범한 팻감에도 백은 응수할 수 없다. 김 4단은 두 눈 질끈 감고 일단 패를 때려내고 본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상변 대마가 죽으면 안 되니까. 그렇지만 흑 95로 뚫린 상처는 치명적이다. 좌변에서 두툼하게 날 수 있었던 백 집이 허물어지고 좌상 백의 생사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흑 95 이후 사실상 승부는 끝났다. 이후 수십 수 진행됐지만 의미 없는 수순들이었다. 허탈해진 김 4단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이었을 뿐이다. 이후 수순은 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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