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윌리엄 C. 버거 지음·채수문 옮김/391쪽·1만6000원·바이북스
인류 번성 일등공신은 꽃
전 지구상에 살고 있는 육상식물은 약 30만 종에 이른다. 이 중 꽃을 피우는 식물은 약 87%를 차지한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사막이나 툰드라 지대, 호수, 열대우림 등 장소나 기후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종류가 자란다. 언뜻 연약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 꽃이 실은 어떤 생물 종 못지않게 강력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식물학자인 저자는 꽃의 정의와 분류, 진화과정과 기능 등은 물론 꽃이 어떻게 인류와 세상을 바꿨는지를 설명하며 꽃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은 그렇지 않은 식물에 비해 훨씬 더 종이 다양하고 개체 수도 많다. 이는 수정에 성공하고 난 뒤 씨앗 내부에 영양분을 비축하기 시작하는 중복수정 덕분이다. 수정이 일어나기도 전에 에너지부터 비축해두는 겉씨식물과는 달리 훨씬 효율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꽃을 피우고 번식할 수 있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데도 당연히 이유가 있다. 꽃이 화려한 경우 대부분 곤충을 비롯한 동물을 유혹해 꽃가루를 수정한다. 이 경우 지역의 종의 다양성이 현저히 높아진다. 바람으로 수정할 경우 바람이 닿는 지역 내에 비슷한 식물만이 살게 되지만 더 먼 거리를 산발적으로 이동하는 동물을 통해 수정하면 한 지역에도 다양한 식물이 자라게 된다.
인간의 팔은 어깨를 중심으로 자유자재로 돌아간다. 저자는 이것이 결국 꽃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나무 위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면서, 또 꽃에서 사는 곤충이 몰리면서 식량을 얻기 위해 영장류가 나무를 타는 생활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유연한 팔과 손가락 힘, 열매의 색을 판별하는 색깔인지세포,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를 계산하기 위한 3차원 시각이 이로써 발달했다. 상록수림이 줄어들면서 초원지대로 이주하게 된 인류는 본격적으로 직립보행을 시작했다. 시야는 넓어지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됐다. 나무를 타며 발달된 팔과 손의 기능과 시각은 인류의 번성에 원동력이 됐다.
숲과 초원을 풍요롭게 하고 농업을 발달시키는 데도 꽃의 역할은 컸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대부분 빨리 죽고 빨리 썩는다. 순환이 빠른 만큼 토양도 비옥해진다. 각종 곡물이나 고구마, 감자 등도 꽃을 피우는 식물에 포함된다. 우리가 섭취하는 칼로리의 90% 이상을 꽃 피우는 식물이 제공한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도시가 확대되면서 수목이 파괴되는 현상을 우려한다. 6500만 년 전의 대멸종 때도 꽃을 피우는 식물은 생존해 식생을 다양화하고 동물들의 먹이가 됐다. 하지만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된 뒤에는 식물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저자가 인류는 “생태계의 위대한 정원사”가 돼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인간 문명의 발전에 강력한 추진력을 부여함으로써 그 이전의 어떤 다른 생태적 변화보다도 더 세상을 깊숙하게 변화시켜 왔다.…이제 우리 인간의 공격에 생태계 전체가 비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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