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치던 날 가마를 타고 외가에 가던, 다리를 저는 꼬마 아가씨는 맨발의 거지 소년 디딤이를 보고 꽃신을 벗어줬다. 디딤이는 아가씨에게 은혜를 갚고 싶어 신발을 만드는 갖바치가 됐다. 구름무늬 당혜(여성용 가죽신), 당초무늬 당혜, 기름 먹이고 징을 박아 비 올 때 신는 징신, 노인들이 신기에 편한 발막이도 만들었다. 성격이 급해 신발이 빨리 닳는 남자에겐 배악비(가죽신 안쪽에 붙이는 헝겊이나 종이로 신을 질기게 해줌)를 두툼하게 붙여 튼튼한 태사혜를 만들어 줬다.
어느 날 디딤이에게 꽃신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어릴 적 만났던 그 아가씨였다. 결혼을 앞둔 아가씨는 남들에게 다리 저는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다. 디딤이는 정성을 다해 비단과 가죽을 구하고 광목과 모시에 쌀풀을 먹여 가을볕에 말려 빳빳한 배악비를 만들었다. 그리고 오른쪽 신발 안에 티 나지 않게 굽을 넣었다. 꽃신은 아가씨만큼 예뻤다.
시집가는 날 아가씨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아가씨는 디딤이의 꽃신 덕분에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로 걸었다. 디딤이는 어릴 적 아가씨가 주었던 꽃신을 가슴에 품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매끄러운 글과 민화를 연상시키는 따뜻한 분위기의 삽화가 이 책의 매력이다. 옛날 신에 대한 갖가지 정보도 재미있다.
옛날에는 신발을 만드는 일이 나라에서 관리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조선의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궁궐 안에 갖바치를 두고 신발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갖바치가 만드는 가죽신은 양반들만 신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주로 짚신을, 중인들은 닥나무나 삼을 짚신처럼 엮은 미투리를 신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신는 신발도 달랐다. 비가 올 때는 나막신과 징신을, 추운 겨울에는 발과 발목을 따뜻하게 감싸는 동구니신을, 눈이 올 때는 미끄러지지 않게 신발에 설피를 덧씌웠다. 우리 전통 신발에는 좌우 구분이 없다. 신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은 사람의 양쪽 발에 맞도록 모양이 변해 신을수록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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