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영화를 철학으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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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30일 03시 00분


◇시네 필 다이어리/정여울 지음/430쪽·1만7500원·자음과모음


영화평론이라고 하기엔, 이 책에서 언급되는 영화들은 시의성이 떨어진다. ‘쇼생크 탈출’(1995년) ‘굿 윌 헌팅’(1998년) ‘뷰티풀 마인드’(2002년) 등이 주로 등장하니 언젯적 영화들인가 싶다. 제목과 목차만 훑어보고 영화평을 모았으려니 생각하지 말자. 문학 평론가이자 대중문화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영화’를 끌어들여 결국 철학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를 읽는 독법을 제공해주는 철학, 한 철학의 진수를 반영한 영화. 두 가지를 대비시켜 한번에 영화와 철학, 두 가지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풀어간다.

친일파의 핵심 권력층인 이 선생과 그를 암살하려는 항일단체 요원 왕치아즈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리안 감독의 ‘색, 계’. 저자는 이 영화를 롤랑 바르트의 ‘풍크툼’(일반화된 상징을 뜻하는 ‘스투디움’과 반대되는 말로 해독하기 힘든 개별적인 효과를 뜻함)을 중심으로 풀어간다. 경계와 탐색의 외줄을 위태롭게 오가며 서로의 상처 너머로 소통의 통로를 탐색했던 두 사람. 학생 항일운동 조직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르게 된 살인, 왕치아즈에게 점차 경계심을 풀게 되는 이 선생, 결정적으로 그들의 진심을 확인시켜주는 아름다운 반지 등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주요한 일화들은 ‘소통 불가능, 혹은 해독 불가능한 상징’으로서의 풍크툼으로 설명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어떨까. 유년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신화적인 모티브로 구현해내는 미야자키 감독은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에서 신화에 원형을 둔 유사한 이미지의 캐릭터들을 선보여 왔다. 이 작품이 가진 신화적 구성을 저자는 조지프 캠벨의 ‘신화의 힘’을 통해 분석한다. 치히로 내부에 잠자고 있는 소명과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환상적인 모험담을 통해 선보인 이 영화는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는 캠벨의 말과 충돌하며 한층 풍부한 의미를 빚어낸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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