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리사 기자가 직접 가본 칠레 세계조리사 총회
‘국가대표’ 한식 베테랑 9명… 밤새워 18가지 메뉴 준비
“불고기, 빵에 싸먹기 좋아”…“잡채서 자연의 맛 느껴져”
30분만에 모든 음식 동나
2010 세계조리사회연맹(WACS) 칠레총회 한국조리대표단으로 참가한 본보 이기진 기자(가운데)가 29일(현지 시간) 산티아고 컨벤션센터 오찬장에서 직접 만든 요리를 WACS 회장단에 제공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조리사회중앙회
29일 오전 1시 반(현지 시간) 산티아고 카사피에드라 컨벤션센터 1층 주방. 132m²(약 40평) 남짓한 공간에 한국조리사 9명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리기능장인 주종찬 창신대 교수(49·호텔조리제빵과)는 주방 세 곳을 정신없이 오가며 조리사들을 다그쳤다. 벌써 10시간째다.
한국조리사회중앙회가 선발한 이들은 WACS 칠레총회에 참석한 세계 90여 개국의 유명 조리사 500여 명에게 한식을 제공하기로 돼 있다. ‘요리사 올림픽’으로 불리는 이 대회 차기(2012년) 개최국이 한국이기 때문.
세계 최고 요리사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대규모 한식을 선보이기는 정부가 한식 세계화를 선포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선발된 조리사들은 대부분 한식베테랑. 서울 인사동 한식당 ‘촌’ 조리장 김훈, 영등포 ‘화수목’ 조리장 이동림, 대전 ‘청해루’ 대표 이정삼, 울산 ‘이가한정식’ 대표 김준호 씨가 포함됐다. 주니어 요리 시범을 위해 대영고 2학년인 임신영 군(17)도 합류했다.
한국마사회 조리장이자 창신대 겸임교수인 나용근 씨(39)는 “혀끝이 예리한 세계의 요리명장에게 제대로 된 한식을 선보이고 싶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조리사들은 각자 자신 있는 메뉴를 2, 3개씩 분담했다. 분량은 모두 500인분. 조리사 9명은 23일 칠레에 도착하자마자 시차적응을 뒤로한 채 현지 재래시장을 훑고 심지어 신선한 생선을 구하기 위해 승용차로 1시간 반 거리인 발파라이소 항구까지 찾았다.
어느덧 오전 4시. 각 요리의 진행 정도를 점검했다.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농어는 쪄내기만 하면 되고, 수삼냉채를 위한 절편도 끝났다. 삼색밀쌈에 쓸 채소도 마무리돼 가고 비빔밥 재료 준비도 끝난 상태.
하지만 일부 문제가 발생했다. 떡볶이의 매운 맛을 서양인 입맛에 맞추기 위해 배와 양파 등으로 육수를 미리 만들어둬야 했다. 불고기는 구워야 하는 데 숯을 사용할 수 없었다. 준비가 덜 된 메뉴가 발견되자 작업은 이어졌다.
드디어 오찬 30분 전. 컨벤션센터 2층 오찬장에는 화려한 한식의 마술이 펼쳐졌다. 흰색과 연두, 주황색의 밀쌈은 갖은 양념을 껴안은 채 혀를 유혹했다.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와 버섯 시금치가 어우러진 궁중잡채, 청아한 빛깔의 백김치는 입맛을 자극했다.
컨벤션센터의 문이 열리자 세계 일류 요리사들이 ‘체면을 접은 채’ 오찬장 안으로 밀려 왔다. 신비감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
오스트리아 대표 만드레트 브러너 씨(66)는 “불고기를 빵에 싸먹어도 어느 햄버거보다 우수할 것 같다”며 사업성까지 전망했다. 잡채는 한결같이 스파게티를 말 듯 포크로 돌돌 말아먹어 한국인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떡볶이는 입안에 달라붙고 매운 탓인지 일부 거북해하는 표정도 보였다. 산티아고 이나캅대 호텔경영학과 티가로아 교수(32)는 잡채를 맛본 뒤 “부드러운 면발과 야채의 맛이 어우러져 자연의 맛이 우러난다”고 평가했다.
시작 30분 만에 모든 음식이 동났다. 500명을 예상하고 600명 분량을 준비했으나 700여 명이나 몰려든 것. 기쉬르 귀드뮌손 WACS 회장은 “오늘 느낀 한식은 전 세계인들에게 한식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며 “멀리서 와 오찬을 준비해 준 한국 조리사들의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산티아고=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 WACS(World Association of Chefs Societies) ::
세계 초일류 요리사들의 모임. 1928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됐다. 국제 요리의 표준을 향상시키고 셰프의 전문성 향상을 목적으로 한 비정치적 전문가 기구로 현재 87개국이 가입해 있다. 2년마다 회원국을 순회하며 총회를 연다. 칠레 대회에는 회원국 조리사 8000여 명(잠정 집계)이 참가했다. 2012년 총회는 대전에서 열린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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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1 17:11:53
우리나라의 음식문화를 널리 알릴수 있는 일이라서 자궁심이 느껐지는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