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형 오 작가의 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났다. 그러니 민준도 짝사랑 전문가. 본격적인 사랑이야기를 그려야 하는데 경험이 없으니 만화도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독자들이 '이야기가 너무 늘어지는 것 아닌가요', '점점 지루해지는데요'라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 때 학창시절 친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조금씩 조언을 해주더니 어느 날부터 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당시 군인이던 친구는 종이에 원고를 썼고 오 작가는 일주일에 한 번 면회를 가서 원고를 받아왔다. 원고료 중 일부를 나눠줬다.
두 번째 작품 '오리우리'도 함께 했다. 그 친구는 정식 스토리 작가가 돼 '쪼(JJO)'라는 가명도 만들었다. 독자들 반응도 좋고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오 작가는 허전했다.
"나 혼자 한 작품이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어요."
이때부터 A형 남자의 고민이 시작됐다.
'이제 제대도 했는데 '쪼'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내가 혼자 하겠다고 하면 서운해하지 않을까? 내가 원고료도 많고 잘 나가는 작가이면 같이 하자고 할 텐데 원고료도 넉넉하게 못 주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마침 메신저에 들어와 있던 '쪼'에게 말을 걸었다.
"다음 작품은 내가 혼자 해보면 어떨까?" "그래."
너무도 흔쾌한 대답에 괜히 고민했나 싶었다.
● 사랑 많이 받은 작품? 내겐 힘든 기억
2004년 인터넷에서 경기도 부천시 소사고등학교 앞에 위치한 '풍림문구'가 화제가 됐다. 일반 실내화에 'NASA의 기술로 재활용된 실내화' 등 재치 있는 설명을 덧붙여 인기를 얻은 것.
"'풍림문구'를 보고 물건을 파는 주인도 사는 손님도 재밌겠다 싶었어요. 거기에 주인이 날씬하고 예쁜 누나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미스 문방구 매니저'를 기획하게 됐죠. 살을 붙이다보니 추리물이 됐어요."
"독자가 다음 회를 기다리게 하고 싶었어요. 제 만화가 발동이 늦게 걸리는 편이거든요. 보다보면 재밌는데 그때까지 독자들이 안보더라고요. 그래서 처음부터 '빵 터뜨려서' 끝까지 보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첫 회부터 댓글이 수백개 달리고 반응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게다가 초반부터 범인을 알아챈 독자들이 있었다.
"작가는 한 명인데 독자는 1천명이 넘잖아요. 독자들이 리플을 달면 그 안에 범인이 있고, 범인을 지목한 독자를 보면 들켰다 싶어서 덜컹했어요. 그러면 독자들의 예상과 다르게 진행하려고 머리를 쥐어짰어요."
댓글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예상을 피해가면서 만화를 그리다보니 스토리가 산으로 갔다.
"댓글에 휘둘리다보니 당초 기획했던 것과 달리 스토리가 틀어졌어요. 추리물이라 다 짜맞춰야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죠. 끝낼 수 있을까 싶은 마음 밖에 없었어요."
오 작가는 '미스 문방구 매니저'가 언급될 때면 '힘들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며 단행본으로까지 출간된 만큼 애정이 많을 줄 알았는데 정반대였다. '힘들었다'가 열 번쯤 반복된 후에 물었다.
"뭐가 가장 힘들었어요?"
"너무 많아서 다 말씀드리기도 어려운데… 첫 회부터 대박이 날 줄 알았는데 15회쯤 연재한 뒤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거든요. 나 자신이 재밌는 만화를 그리다보면 인정받게 되는 것인데 그 때는 이렇게 재밌는데 반응이 왜 없지? 이런 마음뿐이 안 들었어요. 추리물이라 정교한 스토리에 반전까지 생각하려다보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고요. 추리물의 특성상 분량이 많거든요. 그래서 운동을 못하니 몸도 안 좋아졌고요. 주2회로 연재하던 것을 주3회로 늘리다보니 마감시간을 못 지켰고 제때 만화가 올라오지 않으니 독자들 항의가 많았고요…."
끝이 없었다. 칭찬을 해봤다
"'미스 문방구 매니저'가 만화계에서 평이 좋아요." "어, 그래요?" "한국판 추리만화가 나왔다는 말도 있던데요." "음… 처음 들었는데요." "마지막회가 업데이트 된 날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잖아요." "아, 정말요? 기억나지 않는데…."
침묵이 흘렀다.
● 댓글에 좌지우지되는 만화는 그만
힘들었던 미스 문방구 매니저의 차기작은 학원 개그물 '셔틀맨'이다.
소재는 '빵셔틀'. '빵셔틀'은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학생들에게 빵을 사다 나르는 왕따 학생을 일컫는 말로 학원폭력의 새로운 유형이다.
"빵셔틀이 '병맛(거북하거나 비호감인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이긴 하지만 왕따 학생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 보다는 관심이라도 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만화 연재를 시작하기 2주 전쯤 빵셔틀을 다룬 기사가 보도됐다. 소심한 오 작가는 댓글부터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빵셔틀 놀리지 마라' 등 악플이 한 가득.
"댓글을 보니 만화를 올리면 욕먹겠다 싶었어요. 흔들렸지만 유머는 유머로 받아들이겠지 믿기로 했어요."
A형 소심남이 처음으로 댓글에 휘둘리지 않았다.
"초반엔 역시나 '작가가 생각이 없구만', '왕따로 만화를 그리다니'라는 식의 댓글이 많았어요. 하지만 '빵셔틀'을 놀리는 것 같았던 건이가 사실은 유일하게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는 내용까지 진행되자 악플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지난번에 악플 달아서 죄송합니다'는 사과 댓글도 있던데요. 하하하."
부전자전이다. 아들은 댓글 내용에 민감해하더니 아버지는 댓글 개수를 매회 확인한다.
"아버지가 만화를 챙겨보세요. 만화를 늦게 올리면 왜 아직도 안올렸냐고 지적도 하시고요. 특히 댓글 개수에 민감하세요. 예전엔 댓글이 많이 달리니까 '현동이 짱이야' 그러셨는데 요즘엔 댓글이 줄었거든요. 인기가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하실까봐 걱정돼요."
앞으론 댓글에 흔들리지 않을 것 같느냐고 물었다.
"제가 흔들리지 않을만한 주제를 선택해 만화를 그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요. 그래도 할 수 있는데 까지는 강하게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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