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 연출 ★★★ 연기 ★★★☆ 극 전개될수록 소설과 달리 ‘욕망’보다 ‘희생’ 부각 맏딸役 서이숙씨 연기 돋보여
객석에서 눈물 콧물 훔치는 소리가 연방 들렸다. 소리 죽여 흐느끼는 이도 있었다. 연극 ‘엄마를 부탁해’ 첫 공연 현장 풍경이었다. 엄마의 힘은 역시 셌다.
연극은 출간 10개월 만에 100만 부가 팔린 원작에 충실했다. 북적대는 서울역 한복판에서 봄날 아지랑이처럼 실종된 엄마(정혜선). 어머니도 아닌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그를 찾아 나선 가족. 그들의 회상을 통해 퍼즐 조각처럼 서서히 맞춰지는 엄마의 초상. 그리고 한쪽 발이 파인 채 파란색 슬리퍼 차림으로 등장한 엄마의 나지막한 독백….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지만 아낌없이 주고 미련 없이 떠나는 엄마의 모습은 분명 감동적이다. 엄마의 부재(不在)를 통해서야 비로소 실재(實在)의 소중함을 깨닫는 가족의 회한과 죄책감은 수조 위에 떨어진 한 방울 잉크처럼 객석을 거침없이 물들인다.
그러나 신경숙의 원작소설과 비교했을 때 이를 연극적으로 형상화한 데는 아쉬움이 남는다. 원작소설이 포착한 엄마는 희생적이기만 한 엄마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다고 생각되는’ 그런 엄마가 아니라 욕망하는 엄마다. 배우고 싶고, 넒은 세상을 체험하고 싶고, 베푸는 만큼 베풂을 받고 싶은 사람이다. 소설은 이를 맏딸, 맏아들, 남편, 막내딸, 그리고 마지막 엄마 자신의 육성을 차곡차곡 쌓는 형식으로 서서히 조형화한다.
‘엄마의 희생’의 가치는 이런 정련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찬란한 금빛을 드러낸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라 남편이나 자녀와 똑같이 욕망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희생적 엄마로 살아가길 ‘선택’한 것이다.
연극은 소설의 이런 다성(多聲)적 구성을 쫓는 듯했다. 극의 시작이 ‘엄마’를 애타게 찾는 가족의 목소리가 뒤섞이며 이뤄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어지러운 불협화음만 빚어낼 뿐 각자의 음역을 확보하면서 ‘따로 또 같이’의 화음을 들려주는 데 실패한다. 극이 무게중심을 찾게 되는 것은 공연이 시작하고 한 시간여 지나 맏딸(서이숙)과 엄마의 엇갈린 대화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서이숙 씨의 노련한 연기가 돛대가 되고, 정혜선 씨가 그를 타고 오르는 바람이 되면서 무대가 안정감을 찾는다.
그러나 이들 모녀가 무대를 장악하면서 다른 이들의 목소리는 메아리로 전락한다. ‘엄마의 꿈’인 맏아들(길용우)과 ‘엄마의 기쁨’인 막내딸(이혜원)이 주변화하고 ‘엄마의 분신’인 맏딸과 엄마 자신이 중심축이 되면서 ‘희생적 엄마’만 부각되고 ‘욕망하는 엄마’는 흐릿해진다.
사실성을 강화하기 위해 영상에 많이 의존한 고석만 씨의 무대연출은 극 초반의 다성적 구도와 뒤섞여 관객의 극 몰입을 방해했다. 차라리 극 중반부에 등장하는 서이숙-정혜선 콤비의 갈등구조를 초반부터 등장시켰다가 부채꼴로 다른 가족과 관계를 확장해가는 구성이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엄마 역의 정혜선 씨가 “나도 늘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했어요”라며 자신의 엄마(백성희) 품에 안기는 마지막 장면이 더 빛났을 것 같다.
극중 가족들은 맏딸에게 계속 “엄마를 부탁해”라고 말한다. 맏딸 역의 서 씨는 엄마가 아니라 연극 전체를 부탁받았다고 할 만큼 입체적 연기로 작품 전체를 구원했다. 4만∼6만 원. 3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02-399-1114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1월 12일자 ‘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은 뮤지컬 ‘컨택트’의 세 에피소드를 연결하는 소품이 무엇인지 관객이 직접 찾아보라는 퀴즈를 냈습니다. 작품을 본 관객 중 e메일과 전화로 답을 문의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답은 ‘큐피드(에로스) 동상’입니다. 1장과 2장에서는 동상으로 등장하고 3장에선 남자주인공 마이클이 수상한 트로피 형태로 등장합니다. 큐피드는 ‘사랑의 신’으로 그의 화살에 맞고 처음 눈을 마주친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만듭니다. ‘컨택트’에 등장하는 다양한 환상이야말로 그 큐피드의 화살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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