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번드르르한 말인 巧言(교언)을 경계했다. ‘논어’ ‘學而(학이)’에서는 “巧言令色(교언영색)은 鮮矣仁(선의인)이니라”라고 하여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잘 꾸미는 자 가운데 어진 사람이 드물다”고 했으며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에서는 巧言이 德을 어지럽힌다고 했다.
巧(교)는 아름답다, 훌륭하다, 꾸민다는 뜻으로 巧言(교언)은 말을 꾸미는 일, 혹은 번드르르하게 꾸민 말을 가리킨다. 巧言亂德에 대해 공영달은 巧言과 利口가 德義(덕의)를 어지럽힌다고 했는데 德義의 주체는 분명하지 않다. 주자는 巧言이 옳고 그름을 變亂(변란)시키므로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지킬 바를 상실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정약용은 巧言이 덕 있는 어진 사람을 해치게 된다고 재해석했다.
小不忍은 작은 것을 참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주자는 이 구절을, 작은 것에 차마 하지 못함과 하찮은 일을 참지 못함의 두 가지로 풀이했다. 차마 못하는 마음이 지나쳐 일을 결단하지 못함을 婦人(부인)의 仁이라 하고, 하찮은 일을 참지 못해 지나치게 과감한 것을 匹夫(필부)의 勇(용)이라 한다. 남성과 여성을 성적으로 차별한 말이 아니라 사태의 특성을 음과 양으로 대비시킨 말이다. 亂大謀는 大事를 실행할 큰 계책을 어지럽혀서 그 大事가 완수되지 못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忍 공부는 참으로 어렵다. 주자는 羞恥(수치)에는 참아야 하는 것도 있고 참아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고 전제하고 “일에는 분명히 忍耐(인내)해서 안 되는 것이 있거늘 어찌 전적으로 인내만 배우겠는가? 인내만 배우게 되면 그 폐단이 구차하고 미천한 상태에 이르게 만든다”고 했다. 正義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서는 분연히 저항하자. 하지만 正義와 무관한 작은 일에 일일이 노기를 띠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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