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모습에는 그동안 지나온 고난의 세월이 묻어났다. 감격스레 꼭 감은 눈, 이마 밑으로 흐르는 땀방울, 종종 터져 나오는 마른기침…. 관객 1만1000여 명은 숨을 죽인 채 역경을 이기고 돌아온 팝의 디바를 지켜봤다.
6일 오후 7시 12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휘트니 휴스턴(47) 첫 내한공연의 막이 올랐다. 남자 댄서 4명과 함께 등장한 휴스턴은 첫 곡으로 흥겨운 리듬의 ‘포 더 러버스’를 부르며 오른손을 흔들어댔다. 자전적 내용이 깃든 ‘아이 디든트 노 마이 오운 스트렝스’를 부를 땐 회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숙인 채 관객들에게 “아이 러브 유”라고 말했다.
휴스턴은 약물 중독과 재활시설 입원, R&B 가수 보비 브라운과의 이혼 등으로 긴 슬럼프를 보낸 뒤 지난해 9월 7년 만의 정규앨범 ‘아이 룩 투 유’를 발표하며 재기했다. 10년 만의 정규 월드투어 ‘너싱 벗 러브’를 시작하는 이날 무대는 그가 상처를 딛고 화려했던 기량을 되살릴 수 있을지 보여주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트레이드마크였던 폭발적인 가창력은 이날 찾아볼 수 없었다. 중간 중간 힘든 표정으로 한숨을 쉬거나 기침을 했고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했다. 전성기 대표곡인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와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은 파워가 넘치는 원곡과 달리 편안한 멜로디로 편곡해 노래했다.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가로 인기를 얻은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를 부를 땐 후렴구에서 목소리가 매끄럽게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도 관객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티셔츠가 땀범벅이 되도록 열정을 쏟으며 노래하는 휴스턴에게 일제히 일어나 갈채를 보냈다. ‘스텝 바이 스텝’을 부른 뒤 그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서 있자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중년 팬들은 ‘아이 러브 유’를 외치기도 했다. 관객 김만경 씨(33)는 “휘트니 휴스턴의 목 상태가 나쁜 것 같아 아쉬웠지만 열정적으로 무대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7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이틀째 공연에서는 흥미로운 ‘돌발 사건’이 일어났다. 휴스턴이 객석 앞줄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던 한 여성을 지목해 “너무 아름답다”며 일으켜 세운 뒤 악수를 청한 것. 휴스턴과 악수를 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가수 패티 김이었다. 이를 본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나왔다. 공연을 주최한 현대카드의 이영목 과장은 “휴스턴은 패티 김이 한국의 대표 가수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말했다. 휴스턴의 월드 투어는 일본 호주 유럽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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