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꽃잎이 바람에 흩날린 듯하다. 한 발 다가서니 알록달록한 색지 보드에 자리 잡은 나방과 밤벌레가 눈에 들어온다.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팔판동 공근혜 갤러리(02-738-7776)에서 열리는 최봉림 씨의 ‘우연의 배열’전에서 나온 사진들이다. 사진비평가로 활동하면서 마련한 두 번째 개인전. 사진에 있어 우연의 미학을 파고든 작업이다.
20여 년 전 산사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던 최 씨는 밤마다 밀려드는 나방으로 인해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방충망도 막지 못하는 밤벌레에게 섬뜩함과 아름다움을 느꼈던 작가. 그때 기억을 사진작업으로 연결시켰다. 여러 시도 끝에 색지 보드에 전깃불을 비춘 뒤 종이에 앉은 밤벌레를 찍는 데 성공했다. 빛에 눈 먼 나방들이 우발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에서 정교한 아름다움이 묻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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