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보고 나오는데 내 앞날이 환히 비치는 것 같았지. 이제부터 이쪽(공연 무대)에서 일해야겠다고 결심했어. 그러고 나서 단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어.” 1966년 실험극장의 ‘화니’로 시작해 지금도 무대의상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최보경 씨(73)는 처음 연극을 봤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1965년 서울 명동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순교자’였다.
18일 오후 7시, 최 씨는 45년 전 그 자리 서울 명동예술극장에 ‘최보경 무대의상 45년 전’을 올린다. 국수호무용단의 ‘명성황후’, 안은미 무용단의 ‘심포카 바리-저승편’과 함께 명동예술극장 재개관 1주년 기념공연 ‘명인열전’의 일환이다.
최 씨가 무대의상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들소’ ‘돈키호테’ ‘카르멘’ 등)과 출연진(정동환 송승환 씨 등)을 직접 캐스팅하고 무대 세트까지 만들었다. 말 그대로 ‘45년간 꿈꿔온 공연’인 셈이다. 연극 5편, 오페라 5편의 일부분을 공연하는 갈라 형식이다.
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최 씨는 스태프 회의를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처음 ‘화니’의 의상 디자인을 부탁받았을 때는 ‘내가 여기서 청소만 할 수 있어도 정말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는 최 씨는 그 뒤 공연 200여 편의 의상을 제작했다.
물자가 부족해 속치마 옷감으로 드레스를 만들던 시절에도 수입원단을 구해 더 좋은 의상을 제작하려 애썼다고 한다. 석 달 동안 350여 벌을 만들기도 했다(2005년 글로리아 오페라단 ‘투란도트’ 공연). 밤을 새우거나 작업실에서 새우잠을 자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런데도 “힘들었던 적은 없다”고 했다.
각 공연의 모든 연습을 지켜보며 작품을 분석한 덕분에 참여했던 공연의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다. 지금도 의상을 맡으면 최소 열 번 이상 연습을 참관한다.
이번 공연에서 최 씨는 첫 번째 작품으로 이문열 원작의 연극 ‘들소’를 택했다. ‘권력에 지지 않는 예술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무대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1967년 연극 ‘돈키호테’를 맡았을 때로 기억한다. 대사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의상을 제작하면서도 즐거웠단다. “극 중에 나오는 ‘불가능한 꿈’이란 노래가사는 ‘기사의 사명과 특권/이룰 수 없는 꿈 꾸네/견딜 수 없는 슬픔 참네…’ 그랬어. 너무 아름답지?”
오현경 이순재 씨 등 지금은 원로가 된 배우들의 젊은 시절도 기억한다. 오현경 씨는 손수건 하나까지 꼼꼼히 챙길 정도로 공연을 철저히 준비했다. 이순재 씨는 단 한마디로도 공연의 핵심을 파악하고 전달할 줄 아는 배우였다고 회상했다.
최 씨는 좋은 무대의상을 “극중 인물의 영혼을 드러내는 의상”으로 정의했다.
“나이 든 사람은 옷깃도 내리고 주머니도 약간 내려 달지. 인생의 여유를 표현하는 거야. 같은 유니폼도 그렇게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야 해.” 그는 “요즘 무대의상들은 다 웬만큼은 하는데 치밀함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바늘이 마음보다 빨리 가는 것이 싫어서’ 재봉틀 사용법을 익히지 않은 최 씨는 요즘도 직접 손바느질로 장식을 달고 스티치를 넣는다.
“인생을 돌아보면 ‘무대의상을 만들며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싶어. 4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좋은 작품을 보면 욕심이 생기지.”
최 씨는 올해 12월 실험극장의 연극 ‘피가로의 결혼’에서 또 한번 의상을 맡는다. S석 4만 원, R석 5만 원.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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