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로맨스냐 불륜이냐… 뻔한 질문, 펀한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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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뮤지컬 ‘로맨스 로맨스’
노래 ★★★☆ 연기 ★★★☆ 대본 ★★★


로맨틱 코미디와 블랙 코미디의 대위법을 펼쳐내는 뮤지컬 ‘로맨스 로맨스’. 서민으로 분장한 채 낭만을 찾아 나선 부잣집 바람둥이 알프레드(최재웅)와 조세핀(조정은)이 실상은 감춘 채 서로의 환상이 투영된 허상의 가면극을 펼친다. 사진 제공 여유작
로맨틱 코미디와 블랙 코미디의 대위법을 펼쳐내는 뮤지컬 ‘로맨스 로맨스’. 서민으로 분장한 채 낭만을 찾아 나선 부잣집 바람둥이 알프레드(최재웅)와 조세핀(조정은)이 실상은 감춘 채 서로의 환상이 투영된 허상의 가면극을 펼친다. 사진 제공 여유작
사랑은 환상을 먹고 자란다. 로맨스는 그 환상을 투사하는 스크린이다. 스크린은 실재론 텅 빈 공간이다. 하지만 불이 꺼지면 실재보다 강렬한 환영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 된다. 낭만주의(로맨티시즘)는 그 환영의 힘을 찬미한다. 사실주의는 그 환영에 취했을 때 나타나는 현실 도피의 부작용을 저주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그 틈에서 출현했다. 그리하여 환상이라 믿은 것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라 믿은 것이 환상임이 드러나는, 환상과 현실의 숨바꼭질을 펼쳐낸다. 낭만주의와 사실주의가 야누스의 두 얼굴임을 드러낸 것이다.

뮤지컬 ‘로맨스 로맨스’(연출 김달중)는 낭만주의의 본령인 로맨스를 통해 이렇게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대위법(對位法)의 음악을 들려준다. 그것은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와 씁쓸한 ‘블랙코미디’가 가면을 쓰고 펼치는 파드되(이인무)이다.

1988∼89년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던 이 작품은 두 개의 독립된 이야기를 병치한다. 1막 ‘작은 희극’은 19세기 세기말적 분위기의 오스트리아 빈이 무대다. 상류층 바람둥이 알프레드(최재웅)와 조세핀(조정은)은 가식과 허위로 가득 찬 사교계에 염증을 느끼고 진실된 사랑을 찾아 나선다. 허름한 복장으로 기차역 앞을 서성이던 그들은 서로의 모습에서 ‘순진한 소녀’와 ‘불쌍한 예술가’의 이미지를 찾아내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그렇게 진짜 사랑(현실)을 찾기 위한 가짜 연애(환상)가 펼쳐진다. 하지만 관객의 눈에는 뚜렷이 보인다. 알프레드와 조세핀의 역할놀이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듯하지만 실제론 서로의 환상을 채워주고 있음을. 연애가 진행되면서 알프레드는 조세핀이 꿈꾸는 가난한 시인의 역할을 수행하고, 조세핀은 알프레드가 꿈꾸는 순진한 여공이 되어 준다. 욕망의 주체가 되려던 그들은 어느새 서로의 환영을 투사하는 텅 빈 스크린이 되고 만다. 환상은 그렇게 현실을 잡아먹는다.

‘선수들’과 ‘숙맥들’의 사랑
2막 나눠 대조적 연출
따로 추는 ‘2인무’ 느낌도


2막 ‘공동 여름휴가’는 1980년대 미국의 바닷가로 무대를 옮긴다. 1막에서 ‘선수’로 등장했던 최재웅 조정은 씨가 이번엔 가정에 충실한 ‘범생이’ 샘과 모니카로 변신한다. 대학 동창으로 20년 가까이 이성 친구로 지낸 두 사람은 부부동반 여름휴가를 왔다가 ‘넘지 말아야 할 선’ 위에서 아슬아슬한 게임을 펼친다.

서로의 결혼생활에 찬사를 늘어놓던 둘은 불현듯 완벽한 줄 알았던 그들의 결혼이 풍랑에 흔들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서로의 결혼생활에 대한 자랑이야말로 반대로 그들의 결혼생활이 엉망진창이라는 무의식적 신호를 서로에게 보내는 것이라는 깨달음. 그 순간 심야시간 음악을 보내던 라디오에서 풍랑경보가 들리고, 그들도 자신들의 심리적 풍랑에 서서히 몸을 맡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키를 돌리는 두 사람. 모니카는 둘의 우정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절망하지만 샘은 ‘낭만의 축복’으로 그 순간을 추억할 것을 제안한다. 남편의 침실로 들어가며 모니카는 장난스레 화답한다. “오늘밤, 난 다 네 거야.” 그렇게 유보된 환상이 현실을 구원한다.

1막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자인 오스트리아 소설가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의 단편소설이, 2막은 ‘홍당무’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쥘 르나르(1864∼1910)의 희극 ‘가정식 백반’이 원작이다. 프로이트와 동시대 작가의 대조적 작품을 하나의 뮤지컬로 엮어낸 배리 하먼(대본, 가사)과 키스 허먼(작곡) 콤비의 예술적 안목과 세련된 곡 편성은 감탄할 만하다. 하지만 두 작품의 유기적 접목이 배우와 일부 노래에만 머무른 탓에 눈 밝은 관객이 아니면 그 묘미를 뚜렷이 감지하기가 어렵다. 2막을 한국적 상황으로 번안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가냘픈 백조 같은 이미지를 깨고 팔색조 연기에 도전한 조정은 씨의 노래와 연기는 매력적이고 최재웅 씨의 연기와 노래는 단단했다. 고음의 음역으로 두 사람을 탄탄히 받쳐주는 이율, 김수영 씨 콤비는 노래에 비해 연기가 아쉬웠다. V.O.S의 리드보컬 박지헌 씨와 뮤지컬 배우 전나혜 씨가 주연으로 번갈아 출연한다. 4만5000∼5만5000원. 4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1관. 02-501-7888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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