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초연 당시 파격적으로 사회를 풍자해냈던 연극 ‘비언소’가 ‘B언소’로 돌아왔다. 요즘 세태에 맞게 내용을 개작했지만 ‘배설의 쾌감’이 이전 같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 제공 차이무극단
공연장에 들어서면 배우들이 우측통행을 요구하며 관객을 자리로 안내한다. ‘내복을 착용하면 저탄소 녹색성장 사회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를 외치며 배우들이 국민체조를 하기도 한다. 조명이 꺼지자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상쾌하게 울린다. 막이 오르면, 그곳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음껏 배설하고 가는 ‘변소’다.
1996년 초연과 재공연, 2003년 재공연 모두 객석점유율 100%를 넘기며 대학로 히트작 반열에 올랐던 극단 차이무의 ‘비언소(蜚言所)’가 ‘B언소’로 돌아왔다. 뜻도 줄거리도 없는 각 장면이 언뜻 유언비어(流言蜚語) 같지만 그 속에 뼈가 있다. 욕설과 속어 등 ‘B’급 언어가 등장하지만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힘이 있다.
변소를 지나치는 인간군상을 그리며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극의 얼개는 그대로다. 대신 세태 변화에 맞춰 전체 27장면 중 14장면을 개작하며 각 에피소드를 새로 가다듬었다.
계속되는 암전이 혼란스럽지만 처음과 끝, 그리고 극 중간중간 등장하는 비언소여왕(오유진)과 걱정남자(박원상)가 극의 메시지를 분명히 한다. 비언소여왕은 가래침과 쓰레기 범벅인 화장실을 청소하며 ‘드럽다 드러워 드러운 놈들아/드러운 놈들아 버리지 좀 말아라’라고 노래를 부른다. 대통령, 성직자, 노숙자, 예술가, 세상 모든 사람이 화장실을 거치니 ‘모두가 드러운 세상’인 셈이다. 걱정남자는 세상 모든 것을 아는 ‘아는남자’(이희준)에게 의문을 제기하다 ‘저런 사람 때문에 세상이 혼란스러운 겁니다’라는 말에 변소로 조용히 사라진다. 그의 ‘나는 좌로 가야 하나요? 우로 가야 하나요?’라는 질문 역시 ‘집에나 가라’는 핀잔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 게시판에서 ‘더 센’ 풍자와 비판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 연극의 걸림돌이다. 배설의 쾌감을 이 작품이 아닌 다른 매체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비밀경찰이 등장해 관객을 수색하는 초연 때의 마지막 장면은 스님이 천수경을 외는 다소 밋밋한 장면으로 바뀌었다. 결국 ‘끝장’을 보지 못한 듯한 찝찝함이 아쉬움을 남긴다. 2만5000원. 5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차이무 극장. 02-74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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