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의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인 일면 스님(오른쪽 사진 왼쪽)과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홍보대사인 탤런트 양미경 씨가 11일 경기 고양시 MBC드림센터 내 카페에서 만나 김수환 추기경 1주기와 장기기증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 사진은 1990년 각막 기증 신청서에 서명하고 있는 김 추기경. 사진 제공 서울성모병원·고양=홍진환 기자
《1년 전 오늘, 김수환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각막을 기증하고 떠났다. 김 추기경의 각막은 두 사람에게 세상의 빛이 되었다. 그 뒤 장기기증은 크게 늘었다. 특히 김 추기경이 장기기증을 서약한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경우 2009년 한 해 신청자만 3만1705명으로, 1989년 설립 이후 2008년까지 20년간의 신청자를 합친 3만3432명과 비슷하다.
불교계에서도 지난해 말 혜국 스님(전 전국선원수좌회 대표)이 장기시신기증을 서약해 불교계의 장기기증에 불을 댕겼다. 그 후 불교계의 장기기증 운동 단체인 생명나눔실천본부에는 스님들의 장기기증이 이어지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홍보대사이며 천주교 신자인 탤런트 양미경 씨(49)와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일면 스님(63)이 11일 오전 경기 고양시 MBC드림센터 내 카페에서 만나 생명 나눔과 김 추기경 1주기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마음한몸운동 홍보대사 양미경씨 “지갑 속 장기기증 등록증 꺼내볼 때마다 자부심 생겨”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일면스님 “간 이식으로 새 생명 얻어… 오늘도 그 청년 위해 기도”
▽양미경 씨=어서 오세요. 요즘 새 드라마(민들레 가족)를 시작하는 통에 시간 내기가 힘들어 드라마를 찍는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일면 스님=그 덕분에 드라마 ‘대장금’ 한류 스타인 양미경 씨도 만나고, 방송국도 구경하고 좋지요.
▽양 씨=고인이 되신 김 추기경님이 장기기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많이 바꿔놓으셨지요.
▽일면 스님=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적 전통에 따라 몸은 부모가 주신 것이라고 생각해 장기기증을 꺼렸죠. 생명나눔실천본부가 설립된 1994년 당시만 해도 사후 장기기증 서약에 대해 살아서 신체 일부라도 떼 주는 것처럼 잘못 생각했죠. 고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모범을 보인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양 씨=맞습니다. 제가 2004년부터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데 김 추기경 선종 이후로 확실히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장기기증을 하고 싶어도 부모나 주변에서 말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부모와 자식이 손잡고 찾아와 서약하는 걸 종종 봅니다.
장기기증을 총괄하는 보건복지가족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장기기증 서약자는 18만5046명으로 전년도(7만4841명)에 비해 2.4배 늘었다.
▽일면 스님=불교에서는 우리의 몸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즉 사대의 인연이 화합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잠시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왔다가 사라진다는 의미죠. 장기기증은 불교의 오계(五戒) 중 하나인 불살생(不殺生)을 실천하는 겁니다. 불살생은 모든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뜻이며, 나아가 죽은 목숨까지도 살려내는 적극적인 실천을 요구하는 계율입니다.
▽양 씨=장기기증은 가장 큰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해요. 장기기증 등록증을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니는데 힘들고 지칠 때마다 꺼내 보면 자부심을 느끼고 힘이 납니다. 한 사람이 장기기증을 하면 아홉 사람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어요.
통상 뇌사자의 경우 심장, 췌장, 간, 폐 2개, 신장 2개, 각막 2개 등 9개 장기와 인체 조직을 나눠줄 수 있다. 실제로는 피부, 뼈, 연골 등 이식할 수 있는 인체 기관이 더 많다.
▽일면 스님=저도 장기기증자의 고귀한 뜻으로 새 생명을 얻었어요. 1982년 해외 유학을 준비하던 중 간경화 진단을 받았어요. 그 뒤 병세가 악화돼 2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중 2000년 당시 22세의 뇌사자로부터 간 이식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매일 제게 생명을 준 그 청년을 위해 기도를 올립니다. 장기기증 운동을 위해 한평생을 바쳐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면 스님은 당시 간을 이식받은 것을 계기로 2002년 생명나눔실천본부에서 이사로 취임했으며 2005년부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
▽양 씨=2008년 중국을 방문해 백혈병 어린이에게 진료비를 기부하는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형편이 너무 어려워 제때 수술을 못 받는 아이를 보고 많이 울었어요.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는 2003년부터 소아 백혈병 환자를 위해 조혈모세포 기증을 받고 있어요. 매년 300∼400명의 어린이가 백혈병 판정을 받아요. 조혈모세포 기증에도 적극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장기기증 운동이 잠깐의 붐이 아니라 지속적인 운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일면 스님=스님들은 출가해서 수계식 때 모두 장기기증 서약을 하도록 추진해야 합니다. 2009년 말 현재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대기자는 1만7043이나 됩니다.
이들은 김 추기경 1주기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면 스님=선종하시기 1년 전쯤 동국대에서 특강하실 때 뵌 적이 있어요. 참 쉬운 말로 강의를 하시더군요. 종교적인 면을 떠나 모범이 되는 우리사회 큰어른이었어요.
▽양 씨=선종 당시 추모 행렬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눔과 사랑이라는 추기경의 유지가 오랫동안 사회에 메아리쳤으면 합니다.
1시간 반가량 대담을 마치고 헤어지면서 일면 스님은 “제가 회주인 경기 남양주시 불암사가 있는 불암산이 등산하기에 참 좋다”며 양 씨를 초청했다. 양 씨는 “꼭 한번 들러 점심 공양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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