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격주로 토요일 4시간 동안 초등학생 10명에게 국악을 가르치는 전일제 특활수업을 지도할 때였어요. 다섯 명은 원래 국악을 좋아해 수업을 열심히 따라오는데 나머지 다섯은 심드렁하기만 했죠. 고민 끝에 유명한 국악공연 동영상을 보여줬는데도 백약이 무효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타루의 국악뮤지컬 공연을 보여줬는데 ‘선생님 이거예요 이거’라며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올해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신입단원이 된 왕서은 씨(25)의 체험담이다. 판소리를 전공한 왕 씨가 타루에 입단한 이유이기도 하다.
“판소리 공연은 소리꾼이 들이는 땀과 노력에 비해 관객 반응이 무덤덤하기 일쑤인데 타루의 판소리 공연을 본 관객은 정말 ‘빵’ 터지죠. 관객과 그런 교감이 너무도 부러웠어요.”
고참 단원인 이성희 씨(26)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전통 판소리는 한문이 너무 많아 어렵습니다. 타루의 공연은 요즘 언어로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관객이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거죠.”
소통과 교감. 2001년 12월 국악 전공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타루가 처음 결성될 때 화두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판소리가 태동할 때는 대중과 소통이 가능했건만 어느새 대중과 너무 유리된 장르가 됐다는 고민. 심지어 같은 국악 전공자들끼리도 ‘인간문화재’가 된 선생을 따라서 사분오열하는 바람에 서로 섞이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1970년대 전통 마당극을 되살려낸 전통을 되살리자는 의지.
지금은 독립해 독자적 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소리꾼 이자람 씨와 연출가 민경준 씨 등 10명의 젊은 국악 전공자가 모인 타루는 처음엔 연합동아리의 성격이 강했다. 돈을 못 벌더라도 하고 싶은 것 실컷 해보자며 뭉친 그들은 공동창작 방식으로 ‘바퀴벌레 약국이야기’ ‘밥만큼만 사랑해’ ‘구지이야기’ ‘나무야 나무야’ 등의 국악뮤지컬을 만들어갔다. 국악문법과 젊은 감수성이 어우러진 이 작품들은 대학가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2005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 작품들 중 3편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은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가 탄생한 2006년은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발표한 뒤 타루는 두 번째 변신을 맞는다. 작품 발표 때만 모이는 동아리에서 벗어나 전문 제작극단을 지향하면서 단원을 대폭 물갈이한 것. 현재 타루의 판소리 주역인 이성희 권송희 씨(23) 등이 입단해 장편 국악뮤지컬 ‘시간을 파는 남자’(2008년)를 발표하며 국악뮤지컬의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
창단 10년째를 맞은 타루는 올해 두 번째 전환기를 맞았다. 올해 개정된 중1 음악교과서(대한교과서)에는 타루의 창작판소리 ‘과자이야기’가 실린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패러디해 육지 과자를 대표하는 오감자와 바다 과자를 대표하는 꽃게랑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해학적으로 그린 판소리 뮤지컬이다. 여기에 올해부터 극장 용의 상주예술단체가 돼 정기공연을 펼치게 됐으며 정부의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인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됐다. 단원들에게 고정적 수입을 제공하며 완성도 높은 창작활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정종임 타루 대표는 “기획팀 5명, 예술팀 10명과 정식 계약을 맺어 주 40시간을 창작과 연습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며 “올 한 해 동안 타루가 확보한 15편의 창작국악뮤지컬을 레퍼토리 작품으로 가다듬으면서 중대형 창작뮤지컬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타루의 레퍼토리 중 ‘스물 셋 송희’는 여덟 살 때 영화 ‘서편제’를 보고 판소리에 입문한 권송희 씨의 실제 삶이 녹아 있다. 타루는 다음 세대의 또 다른 송희가 나오도록 ‘서편제’ 못지않게 파급력이 큰 국악뮤지컬 창작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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