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가지는 대신 발레단을 만들었다.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이 고등학교 입학할 나이가 됐다. 부모는 “풍요롭게 키웠다면 오히려 이런 기분을 몰랐을 수도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키우다 보니 더 애정이 가고 뿌듯하다”고 했다. 19일로 창단 15주년을 맞는 서울발레시어터(SBT)의 김인희 단장과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 씨(한국체육대 교수) 부부의 말이다. 이들을 16일 오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15년이 지났지만 이들 부부는 발레단에 정성을 쏟고 있다. 전 씨는 이날 국립발레단에서 ‘코펠리아’ 공연에 관한 회의를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전 씨가 2007년 처음 선보인 가족발레 ‘코펠리아’는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 공연으로 4월 무대에 오른다. 국립발레단은 이 작품에 로열티를 지불한다. 국립발레단이 국내 안무가의 전막 발레에 로열티를 지불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단장은 “올해는 후원 모임인 ‘아이 러브 SBT’를 좀 더 확대해 ‘SBT 서포터스’를 꾸려볼 생각으로 이리저리 뛰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재단의 후원을 받지 않는 민간단체로서의 자유로움과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방책이다. 많을 때는 한 해 80회에 이르렀던 공연 횟수가 지난해 금융위기로 약 40회에 그쳤다. 하지만 국립발레단 10분의 1 수준의 예산(한 해 10억∼12억 원)으로 이뤄낸 ‘성과’이기도 하다.
7월의 15주년 기념공연인 모던발레 갈라와 8월의 ‘2010 모던 프로젝트’는 서울발레시어터의 개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연이다. 서울발레시어터는 고전발레 위주였단 창단 당시부터 다양한 모던발레 작품을 선보여 왔다.
전 씨는 “머리 크고 몸 안 예뻐도 춤만 잘추면 된다. 개성과 창의성이 중요한 게 모던 발레”라며 “발레학교도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고전발레로 외국과 경쟁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8년 초연하며 화제를 모았던 록 발레 ‘현존’이나 해외로 수출된 ‘Line of Life’ ‘Inner Moves’ ‘Variations for 12’ 등은 이 같은 전 씨의 생각과 목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2010 모던 프로젝트’는 안성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전 씨가 함께 무대에 올리는 공연이다. 외부 안무가와 서울발레시어터를 연결해주는 작업이기도 한 것. 전 씨는 “요리학원 나온다고 다 요리사가 아니듯 좋은 안무가가 되기 위해서는 프로 발레단과 작업해보는 경험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안무가 지원이 일회성에 그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제 5년 뒤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발레시어터가 20주년, 바로 성인이 되는 해에 발레단을 떠날 계획이다. “그 뒤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열 생각”이라는 답이 이어졌다.
그런 만큼 걱정은 더 많아졌다. 떠나기 전에 후배들에게 안정된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다. 김 단장은 “직장으로서의 무용단체가 적다 보니 요즘 무용 전공자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며 “서울발레시어터가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전 씨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15주년을 맞아 ‘깜짝 이벤트’를 한다”고 귀띔했다. 10주년 때의 ‘작은 기다림’ 공연처럼 김 단장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 “그럼 살을 10kg은 빼야 한다”는 김 단장에게 전 씨는 “티켓 팔려면 김 단장이 무대에 올라야지”라고 응수했다. 늘 자식을 걱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평범한 부모의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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