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에서 DSLR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사진을 찍고 활용하는 일이 일상이 된 세상이다. 전통적 개념에서 ‘사진을 한다’ 는 말은 사진을 전문가처럼 잘 찍는 사람을 뜻하지만 요즘처럼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시점에서 보면 사진을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이 전통적 개념의 ‘사진을 하는 사람’ 보다 더 사진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그는 대학원 총장 외에도 직함이 열 댓 개 있다. 지금까지 쓴 책만도 23권, 하루 눈뜨고 있는 15시간을 끊임없이 자신의 저서 이름처럼 ‘시테크’ 개념으로 쪼개 쓰는 사람이다. 윤 총장이 사진에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한강둔치에서 그를 만나 사진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와 강변의 칼바람 속에 한강의 야경을 찍기 위해 둔치에 나타난 윤 총장은 흔한 캐주얼 스타일의 사진 찍는 모습이 아닌, 넥타이 대신 스카프로 목을 감싼 깔끔한 정장차림이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이하면 ‘추울 때 따뜻한 복장이면 그만이지만 소득이 높아지면 매력을 강조하는 시대가 온다’ 고 주장한 그였기에 본인의 정체성을 정장패션으로 잘 소화한 차림이었다.
―본인이 하는 많은 일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남들은 은퇴해 등산 다니는 이 나이에 저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방송인, 정보사회학자, 골프 칼럼니스트,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 국가산업기술보호위원, 서울시창의포럼자문위원, 국립극장 후원회장 등으로 하루를 바쁘게 삽니다. 제 직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남을 돕는 사람, 즉 어시스턴트죠. 우리 대학의 약자도 발음하면 ‘aSSIST’죠. 제 직업은 축구로 치면 골을 넣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선수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어시스트하는 것입니다. 어시스턴트는 상대방이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으니 싸울 일이 없어서 지금처럼 역할이 자꾸 늘어나는 거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게 아니라 남을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총잡이는 총 맞아 죽고 사무라이는 결국 칼 맞아 죽는 것처럼 경쟁전략은 한계가 있습니다. 베풀고 배려하고 사랑받고 하는 게 지속가능의 핵심 아니겠습니까. 그게 저의 철학입니다.”
―언제 카메라를 접하셨습니까.
“1983년쯤 정보전략연구소를 개설하면서 각종 행사 및 교육기록을 하려고 보니 카메라가 필요하더군요. 당시는 필름카메라였어요. 산업정보학교를 열었는데 그 기록을 나중에 사사에 남기기 위해 샀어요. 그래서 아직도 케케묵은 특이한 사진들이 남아 있죠. 하지만 진짜 사진을 찍고 싶다고 생각한 건 2005년경 우리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개설하고 난 뒤였어요. 수강생 중 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시는 거예요. 당시 와인 공부와 사진 찍기, 악기 다루기는 CEO의 필수처럼 인식되는 분위기였어요. 저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명백한 트렌드라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사진을 찍어 오시면서 이런 게 사진의 장점이구나 하고 느낀 점이 있나요.
“제가 예전에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씩 그분들의 사진을 찍어 두곤 했어요. 얼마 전에 제가 존경하는 소설가 김주영 선생님 생신에 오래 전에 찍었던 그분 사진을 액자에 넣어 드렸는데 그 사진을 보고서 아주 좋아 하시는 거예요. 어떤 명품보다도 나은 선물이 되었죠. 제가 클린턴, 반기문 총장 등 유명인사들 하고도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쪽에서 안 보내주니까 사진이 없어요. 정말 아쉬워요. 그분들과 만났던 얘기를 하면서 사진을 보여주면 좋잖아요. 그냥 얘기하면 왠지 허전한 느낌이죠. 그때 제가 깨달은 게 뭐냐면 최고의 서비스는 사진 서비스다. 돈 주고도 살 수 없잖아요.”
“저희 학교 최고경영자 과정이 요즘 잘나가요. 금년 봄 학기도 벌써 신청자가 백 명이 넘었어요. 성공 비밀 중 하나가 사진입니다. 이분들을 위해 강의실 뒤켠에 멋진 배경이 있는 포토존을 설치했어요. 누구든 포토존에 있으면 사진을 찍어줍니다. 처음엔 사진전문가를 불러 찍기도 했지만 지금은 저나 교직원이 직접 사진을 찍어요. 그렇게 찍은 사진을 몇 장씩 봉투에 넣어 서비스해요. 수업모습 사진도 게시판에 붙여 놓고 원하면 가져 갈 수 있게 해놓았어요. 그랬더니 이분들이 수업 시작 전에 미리 와서 여러 사람과 사진부터 찍는 거예요. 교육과정이 끝나고 수업만족도 조사를 했는데 사진서비스가 좋았다는 평이 나왔어요. 결국 우리가 성공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진에 있었다는 거죠.”
“강의를 듣는 재계 주요 인사들의 인물 사진을 직접 찍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이기도 하고요. 사실 말이죠. 사진을 받는 것 보다 사진을 찍어서 주는 것이 더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전문적으로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인물사진을 찍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면….
“‘세워놓고 찍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표정을 잡기 위해 주로 줌렌즈를 많이 쓴다’ 정도예요. 얘기하게 한 다음 사진을 찍었어요. 처음에는 얼굴이 작아 모든 사진이 비슷해 보였어요. 그래서 점차 표정 위주로 찍게 되더군요. 무엇보다 표정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가능하면 상대방이 의식하지 않게 찍어야 하고 멋지게 찍기보단 그 사람 특유의 표정이 잘 나와야 해요. 그런 까닭에 많이 친해진 다음 사진을 찍으면 의외로 좋은 표정이 많이 나옵니다. 카메라도 너무 큰 카메라를 들이대면 상대방이 긴장하기 때문에 성능 좋은 작은 카메라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현재 주로 사용하는 카메라 기종은….
“최근에 나온 올림푸스 펜을 좋아 합니다. 제 딸도 그 카메라에 반해 사달라고 얼마나 조르는지…. DSLR카메라는 저같이 하루를 쪼개서 분주히 사는 사람들이 들고 다니기엔 너무 번잡하고 무거워요. 제가 그렇다고 프로작가도 아니고. 올림푸스 펜은 저의 ‘매력이 경쟁력이다’라는 주장과 일치하는 카메라 같아요. 아날로그식 디자인과 아트, 나아진 성능 등이 입혀져 경쟁력을 갖는 것 같아요. 렌즈도 교환되고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해 지금 제 처지에 딱 맞는 카메라입니다.”
―지금 사용하시는 디지털 카메라와 아날로그 카메라의 차이를 느낀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카메라에 국한해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문화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이에요. 디지털은 CD, 아날로그는 LP 같은 것 아닌가요. 아날로그는 다소 거칠지만 묵직한 느낌이 드는 반면 디지털은 깨끗하고 가벼운 느낌입니다. 필름카메라는 찍을 때 한번에 정성을 다해야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는 편집이 가능하기에 이전보다 사진을 찍을 때 심리적으로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신혼여행을 인도네시아로 가 알콩달콩 사진 찍고 현상소에 필름을 맡겼는데 그 중 2통을 잃어버려 신혼의 기억이 많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디지털카메라였더라면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시테크 이론자’ 관점에서 보면 아날로그도 장점은 많지만 디지털의 스피드가 더 중요한 만큼 대세는 디지털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사진작가가 있나요.
“마침 저희 최고경영자과정을 마친 두 분이 있습니다. 먼저 배병우선생 인데… 처음에는 그분의 소나무에 뭐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배 선생으로부터 그 소나무 속에는 생명, 기후변화, 환경, 역사의 과거와 미래가 그리고 우리의 문화가 담겨있다는 얘기를 듣다보니 사진이 달리 보이더군요.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소나무 사진을 찍어 결국은 성공한 그분의 면모 또한 좋아합니다. 또 한 분은 탤런트 박상원 씨인데 요즘 즐겨 찍는 바다, 산 등의 사진 톤이 쓸쓸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이더군요. 아마도 탤런트보다 교수로서 후배 양성에 치중하고 있어 좀 더 무게감을 싣지 않았나 싶어요. 그분은 사진전시회에서 팔린 작품 값 전부를 불우이웃돕기 하고 있어 더욱 존경스러워요. 이런 모습은 나와 너, 우리가 모두 상생하는 전략입니다.”
―앞으로 사진으로 해보고 싶은 일은….
“제가 골프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골프장의 다양한 모습을 찍고 있어요. 계속 골프장 사진을 찍어 전시회도 하고 올해 안에 출간할 골프 칼럼집 속에 내 사진을 활용하고 싶어요. 제가 골프 칼럼니스트로서 신동아에 김종필 전 총리나 이어령 교수 등과 얽힌 골프 일화를 기고하고 있는데 사진이 있으면 보내 달라는 거예요. 제가 옛날 사진들을 찾아보니 전부 모자 쓰고 골프채 하나씩 들고 을지문덕 장군마냥 멀거니 서있으니 사진이 다 비슷해 차별성이 없어요. 그래서 생각해보니 배경은 중요치 않다. 골프 드라이버도 헤드 크기가 중요하듯이 사람도 헤드를 크게 찍어야 표정이 살더군요.”
―요즘 국격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만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으로서 사진으로 국가의 위상을 높일 계기가 있지 않을 까요.
“인터넷 강국이고 전자정부 세계 1위 국가인데도 한국을 찾을 수 있는 각 나라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북한 얘기가 더 많아요. 왜냐면 사고를 많이 치니까. 그 다음은 불법시위, 노사파동 현장사진들도 많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이라고 치면 산업의 역동성, 한강 야경,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의 사진이 떠야 할 때입니다. 제가 6·25전쟁 60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나라에 조만간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TV광고를 내보냅니다. 제가 호주 편을 봤더니 6·25 전쟁 때 말은 안 통해도 호주군과 한국군이 전쟁터에 같이 서서 같은 방향을 응시하는 사진이 나오는데 그 사진 한 장이 주는 감동이 어마어마해요. 그 느낌은 말로 풀어선 감당이 안돼요. 오세훈 서울시장도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를 주창하고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등을 이끌잖아요. 그러니까 뉴욕타임스에 전 세계에서 가볼 만한 나라 3위까지 간 것 아니겠어요. 기회가 되는 대로 사진으로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국격을 높이는 길입니다.”
―골프와 사진 중 택일하라면….
“골프도 치면서 사진도 찍고 싶어요. 지난 인터뷰에 보니까 박용성 회장도 골프장에 카메라를 들고 가셨던데. 저처럼 골프칼럼을 쓰고 있는 사람에겐 카메라가 필수겠죠. 다른 일행들이 싫어하지만 사진 찍어 보내준다면 조금 완충이 됩니다.”
윤 총장은 그가 말한 대로 어시스턴트였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좋은 문구나 그 분야 전문가의 말을 잘 인용한다. 오랫동안 강연과 방송을 해 온 탓도 있겠지만 나보다 훌륭한 사람의 말을 앞세워 내 주장을 싣는 것은 객관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만큼 역시 어시스턴트다운 말솜씨라는 느낌이었다.
윤 총장의 어시스트 역할엔 사진이 양념처럼 모두 들어간다.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본인의 수업과 강연에 사진을 활용하고 더불어 인물사진과 골프사진을 찍는 윤 총장의 모습은 최근 사진을 배우면 풍경과 풍물에만 치중하는 많은 사진 마니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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