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시장이 소란스럽다. 봄이 오는 소리다. 어린것들이 제 얼굴을 세상에 내놓겠다고 야단법석이다. 어느새 봄이 온 실내정원. ‘딴따라라 따라라 따라라’ 여린 초록 잎들과 망울을 터뜨린 화사한 꽃들이 봄의 왈츠를 연주한다. 감상할 준비, 되셨나요?
생명 “어머나!” “툭 터진 꽃망울이 제 가슴에 와서 톡 터지는 것 같았어요.” ‘화초 마니아’로 불리는 이정화 대표(47·여). 인테리어업체 ‘씨에스타’를 운영하며 업계에 그린 인테리어 바람을 몰고 온 그는 화초와 함께 40년 넘게 지내왔지만 아직도 새싹이 올라올 때마다 마음에서 울리는 감동을 받는단다.
“스노드롭(snowdrop)이라는 꽃이 있어요. 눈을 뚫고 가장 먼저 꽃을 피워요. 알뿌리 식물로 수선화과죠.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수선화 알뿌리를 심어놓고는 잊고 지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노란 꽃을 피운 거예요. 제 혼자 어떻게 자랐는지 놀랍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한동안 눈을 못 뗐어요.” 이 대표에게 화초는 생명 그 자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3층짜리 그의 사무실은 크고 작은 식물이 곳곳에 빼곡하다. “어릴 때 마당이 있는 할머니 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식물과 친해졌어요. 다니던 중학교에 온실이 있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화초를 키웠고,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매일 꽃과 나무를 다루죠.” 일이 힘들어도 푸른 생명을 보는 낙으로 버텨냈단다. 10일 만난 이 대표는 이날도 양재동 화훼시장에서 ‘블루베리 나무’를 사왔다며 소개했다.
그의 인테리어에서 푸른 식물은 빠지지 않는다. 실내 공기를 정화하고 습도까지 조절해주는 식물의 기능성이나 장식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인테리어에서 중요한 건 기운, 에너지 순환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멋지게 꾸며 놓은 집도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면 죽은 집 같죠.” 그렇다고 그의 고객이 모두 화초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화초 키우기를 두려워한단다. 정히 싫다는 고객에게는 선물로 화초를 안기기도 한다. “한 번은 화초가 싫다는 고객 집에 억지로 고무나무를 들여놨어요. 쉽게 구하기 힘든 잘 자란 나무였죠. 그런데 그 고객이 요즘은 똑같은 화초를 다시 구해달라고 성화예요. 결국 고무나무가 죽어 치웠는데 그 빈자리가 얼마나 삭막한지를 그제야 느낀 거죠.”
글=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디자인=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물은 흙이 말랐을 때 흠뻑 젖을 만큼… 사랑 주는 것도 그렇죠”
소통 “예서제서 흙을 뚫고 솟아오르는 여리고 예쁜 싹들이 보였고, 그것들이 이 세상 빛을 보길 참 잘했다고 저희끼리 좋아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면서…(중략) 예기치 않은 기쁨이요 위안이었다.”(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 중에서)
결혼 2년차인 박지연 씨(31·여)는 “남편이 나보다 화초를 더 챙긴다”며 입을 삐죽인다. 평소 식물을 좋아하는 남편이 결혼과 동시에 화초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화초 사랑이 유난스럽다는 것. “겨울이 되니까 베란다에 있던 화초들을 죄다 따뜻한 방으로 옮겨 와 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놔뒀어요. 볕이 안 좋은 날에는 낮에도 형광등을 켜둘 정도예요.”
화초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그 마음은 자식을 챙기는 부모 마음 같기도, 흡사 연애감정 같기도 하다. 눈을 뜨자마자 달려가고, 밤새 탈은 안 났는지 조바심을 낸다. 기대감에 설레기도 한다. 그러다 이파리라도 떨어져 있으면 가슴이 철렁하고, 새싹 하나라도 돋아 있으면 사랑스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박 씨의 남편 조태성 씨(33)도 매일 아침 “예쁜이들아”를 부르며 식물과 대화를 나눈다. 조 씨에게 화초는 스트레스 심한 생활 속 위안이다.
인터넷 카페 ‘식물과 사람들’의 운영자 원종희 씨(51·여)도 화초를 ‘예쁜 아가들’이라고 부른다.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서” 문을 연 그의 인터넷 카페는 현재 회원 1만여 명을 육박하고, “남편 따라 취미로 시작한” 화초 키우기는 660㎡(200평)이 넘는 하우스로 자리를 넓혔다. “원래 다혈질의 성격인데 예쁜 아가들을 보며 ‘사랑스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여간해서는 화나는 일도, 억울한 일도 쉽게 잊어버려요.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라는 원 씨는 요즘 하우스를 방문하는 손님들과 더 큰 행복을 나누고 있다. “비가 오면 우울하다고 하우스를 찾는 손님도 있고, 자식들 다 키워놓고 나니 무료해졌다며 찾아오는 단골도 있죠. 돌아갈 때는 다들 미소를 찾아 가세요.”
관계 강원 춘천시의 한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성금미 교사(43·여)는 온라인에서 유명한 화초 전문가다. 스타 블로거인 데다 ‘산타벨라처럼 쉽게 화초 키우기’란 책도 냈다. 성 교사가 화초와 인연을 맺은 건 15년 전 제자가 선물한 로즈마리 때문이었다. “반복되는 생활에 권태로움을 느끼던 때였는데 허브가 매력적이어서 푹 빠져들었어요. 닥치는 대로 사들였죠. 그런데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애들이 시들한 거예요.” 그러다 무릎을 탁 쳤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이게 바로 지중해성 기후야”라고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다 허브가 지중해성 기후 식물이라는 게 퍼뜩 떠오른 것이다. “당장 부모님 댁 마당에 허브를 옮겨 심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애들이 싱싱해졌어요. 실내에서 기를 식물이 아니었던 거죠.” 그때부터 성 교사의 관심은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관엽식물로 옮겨 갔다. 현재 그의 집에는 수백 그루의 화초가 함께 산다.
성 교사가 10여 년간 화초를 키우며 터득한 노하우는 바로 물이다. 물주기만 잘하면 90%는 성공이란다. 물을 자주 주란 얘기가 아니다. “꽃집에서 시키는 대로 이틀에 한 번씩, 혹은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줬는데도 화초가 시들어 죽었다고 얘기해요. 그래서 화초 키우기가 어렵다고 하죠. 그런데 대부분 물을 너무 많이 줘서 탈이 난 경우가 많아요.” 그의 설명은 이렇다. 계절마다 온도가 다르고, 햇빛과 바람의 양도 다른데 정해진 날짜마다 물을 주는 건, 마치 소화도 안 됐는데 먹을 것을 우겨넣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간과 관계없이 화분의 흙이 말랐을 때 물을 줘야 한다.
“친구에게도 신신당부를 했어요. ‘며칠에 한 번씩’ 이건 정말 아니다. 흙이 마르면 주라고. 그런데 친구 집에 가보니 화초가 죽어 있더라고요. 제 말을 듣지 않고 너무 자주 물을 준 거예요. 화초가 아니라 사람만 생각해서 조급증에 저지르는 오류인 거죠.” 성 교사는 화초를 오래 키우다 보니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확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딸, 남편,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사랑과 관심을 이유로 지나치게 간섭하는 건 아닌지, 과잉보호를 하는 건 아닌지 돌이켜보게 돼요. 제가 화초를 기르지만, 요즘은 화초가 날 키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죠.” 그는 화초를 통해 관계를 배우고 있다며 미소 지었다.
치유 그래서인지 요즘 푸른 생명을 매개로 한 ‘원예치료’가 각광을 받고 있다. 심리적 안정감, 자존감, 희망, 의지, 감수성 등을 높이는 데 원예가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마음속에 잠재돼 있던 의지와 삶에 대한 긍정의 힘을 회복하는 데 땅과 식물이 제일의 동지였다.’ 남편을 잃고 제주도 한라산 자락에서 ‘청재설헌(淸齋설軒)’이란 농장을 꾸리고 있는 김주덕 씨(55·여)는 자신의 책 ‘힐링가든’에서 이렇게 썼다. 땅을 일구고 생명과 조우하며 상처를 치유한다고 했다.
충북 충주시에 사는 송동근 씨(54)도 집 안에서 화초를 키우며 마음의 상처를 씻어냈다. 어릴 때 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송 씨는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5년 전 하던 사업을 접었다. 당시 그의 눈에 처가에 있던 소철 두 그루가 밟혔다. “화초를 좋아하던 장인어른이 몸져눕게 되면서 그 많던 화초가 하나둘씩 죽어갔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소철 두 그루가 힘겹게 살아있는 거예요.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싶어 집으로 가져와 키우게 됐죠.” 화초에 대한 정보가 없다보니 인터넷 카페를 뒤져가며 정성을 쏟았다. 지금 송 씨의 집에는 300그루가 넘는 화초가 자라고 있다. 그는 “화초들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할 정도로 활기를 되찾았다. 그의 아내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적당히 하라며 걱정하지만 송 씨는 열성을 다한다. 인터넷 카페 ‘식물과 사람들’의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이제는 초보자들에게 도움까지 주고 있다. “몸이 불편하니까 결혼도 쉽지 않았고, 직장일도 사업도 어렵게 꾸렸죠. 그러면서 우울하게 지낸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식물을 기르는 행복감에 충만해 있어요.” 송 씨는 푸른 생명을 예찬했다. ▼잎 색 진한 것이 건강… 처음 키울 땐 다육식물이 좋아▼
여전히 웅크리게 되는 추운 날씨지만 실내 화초들은 여린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노면(路面)의 흙도 들썩인다. 햇볕을 쬐며 싹을 내보낼 채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우수(雨水). 개구리도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경칩(驚蟄)이 오기 전에 서둘러 화초 하나쯤 장만해보자. ‘산타벨라처럼 쉽게 화초 키우기’의 저자 성금미 씨와 인테리어 업체 ‘씨에스타’의 이정화 대표가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튼튼한 화초는 어떻게 고르나요.
▽성=초보자라면 작은 꽃집보다는 비교해 고를 수 있는 화훼시장을 가세요. 잎 색깔이 진하고 줄기가 굵고 튼튼한 화초가 건강한 녀석입니다. 흙 위에 작은 벌레가 기어 다니지는 않는지, 잎 뒷면에 벌레가 붙어있지 않은지도 꼼꼼히 살피세요. 꽃이 피는 식물은 봉오리진 것보다 꽃이 두세 송이 피어있는 것이 좋습니다.
―물 주기가 가장 중요하다면서요.
▽성=물만 잘 줘도 성공입니다. 무조건 흙이 말랐을 때 뿌리까지 젖도록 흠뻑 주세요. 물을 찔금찔금 주면 화초는 금방 죽습니다. 작은 화분은 겉흙이 뽀송하게 말랐을 때 주면됩니다. 큰 화분은 속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때 나무젓가락을 깊숙이 넣었다가 꺼내 보면 되는데, 젓가락에 흙가루가 많이 붙어 있으면 속흙이 아직 젖어 있다는 얘기니 축축한 느낌이 없을 때 물을 주세요.
―초보자가 쉽게 키울 만한 식물은 없을까요.
▽이=요즘 인기가 높은 다육(多肉)식물을 키워보세요. 잎이나 줄기에 수분이 많아 손이 많이 가지 않습니다. ‘초록장미(칠복신)’나 ‘청옥’ 등이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다육식물은 특히 밤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해서 잠잘 때 옆에 두면 숙면을 돕지요. 낮에는 꼭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세요.
―인테리어 효과도 높이고 싶은데요.
▽이=폴리시어스, 알로카시아 등은 키우기도 쉽고 모던한 인테리어에도 잘 어울립니다. 벵갈고무나무 같은 종류는 이국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고요. 저는 화분을 일렬로 세워두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제법 큰 녀석들은 하나씩 군데군데 배치하는 게 좋고, 크고 작은 화분을 한쪽에 둥글게 모아두는 것도 좋지요.
―키우던 화초들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성=봄맞이를 준비할 시기입니다. 겨울 추위에 냉해를 입은 화초라면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해주세요. 잎이 말랐거나 반점이 생긴 것, 줄기가 물컹거리는 것 등은 회복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너무 웃자란 줄기도 가위로 잘라주세요. 봄의 기운을 받으면 더 왕성하게 자랍니다. 뿌리가 화분에 꽉 찼다면 분갈이를 해주세요. 단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꽃이 진 이후에 분갈이를 해야 합니다. 영양제는 식물이 왕성하게 자라는 3∼5월, 9∼11월 사이에만 주는 게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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