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비보(悲報), 생각하지 못한 비보가 내 귀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경성(서울)에 계시는 이태왕(李太王·고종) 전하께서 오전 1시 35분 뇌일혈이 발병해 오전 7시 50분 중태에 빠지셨다는 소식이었다. 아아, 지금까지의 기쁨은 이내 슬픔으로 변했다.”
1919년 1월 21일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1901∼1989)는 이렇게 일기를 썼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1897∼1970)과의 결혼을 나흘 앞둔 날이었다. 고종의 승하로 이들의 결혼식은 이듬해인 1920년 4월 28일로 연기됐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영친왕비의 친필일기 1권을 비롯해 편지 39통, 엽서 121장, 사진 514장, 영친왕 수첩, 영친왕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흐르는 세월’ 필름 등 영친왕 일가의 희귀자료 706점을 18일 공개했다. 이 자료들은 2008년 12월 재일동포 하정웅 씨가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기증한 것이다. 이날 공개된 일기는 영친왕비가 1919년 1월 1일∼12월 31일 중 136일의 일기를 일본어로 쓴 것이다. 여기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로서의 설레는 감정, 나라를 잃은 황태자 영친왕에 대한 연민, 결혼식을 나흘 앞두고 발생한 고종황제의 승하와 그에 따른 결혼 연기, 조선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등이 사실적으로 기록돼 있다.
1919년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31일자 일기는 영친왕비의 내면과 당시 시대 상황이 담겨 있다.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즐거운 추억은 오직 전하께서 오셨을 때의 기억이다. 이것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상이다. 이것은 올해가 아니면 맛볼 수 없었다. 슬픔이 변해서 기쁨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두 번, 세 번, 몇 번이라도 거듭해 가야 할 즐거움이다.”
1921년 일본에서 갓 태어난 장남 진을 바라보고 있는 영친왕 부부. 사진 제공 국립고궁박물관고궁박물관은 순종황제비인 순정효황후가 1961년 영친왕 부부에게 안부를 묻는 친필 한글편지, 덕혜옹주가 영친왕 부부에게 보내 문안 엽서, 1960년대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환국과 관련해 입국 절차를 논의한 편지 등도 함께 공개했다. 특히 순정효황후의 한글 편지는 왕가의 편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고종황제의 막내 딸 덕혜옹주가 1929년 영친왕과 영친왕비에게 따로 보낸 새해인사 엽서도 눈길을 끈다.
“오라버님. 밝은 기분으로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신 것을 더욱더 하례 드립니다. 설날. 덕혜.” “언니 보세요. 밝은 기분으로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신 것을 더욱더 하례 드립니다.”
사진 자료의 경우,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을 모시고 한반도 서북부지역을 순행하는 사진, 덕수궁 석조전에서 일본 관료들과 찍은 사진,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황제와 함께 찍은 사진, 영친왕 부부가 갓 태어난 장남을 안고 바라보는 사진 등이 포함돼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