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연극여왕으로 윤소정 씨(66)가 뽑혔다. 연극 ‘에이미’ 속의 연극배우 에스메 역으로서다. 연극계의 중론은 만장일치에 가까웠다. ‘이달의 연극여왕’ 기획 취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를 소개한다는 것이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영상매체에 맞서 오만하게 연극의 우위를 논하다가 딸의 죽음 이후 겸손히 연극정신에 눈을 뜨는 노배우를 연기한 것은 그만큼 감동적이었다. ‘연극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예순이 넘은 노배우를 연극여왕으로 선정한다.(추천해 주신 분=연극평론가 김방옥 씨, 극작가 정복근 씨, 공연기획가 손상원 이다엔터테인먼트 대표)
○ 겸손한 자신감 묻어나는 야누스적 매력
“연습기간이 워낙 부족해서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이렇게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컸는데….”
인터뷰 초반 그는 “내가 정말 그렇게 잘했나”라고 물었다. ‘에이미’를 번역한 성수정 씨에게 3년 전 대본도 안 보고 출연 약속부터 했던 일을 자책하다 “지금은 네가 ‘웬수’ 같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전 한 번도 제가 연기 잘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배우는 발성이 중요한데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어울리는 역이 아닐 때는 연기가 어색하다는 자평이다. 하지만 순간 자존심 강한 에스메와 똑 닮은 말이 나왔다. “그렇다고 동년배 중에서 나보다 잘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하면 또 그런 사람이 없는 게 문제지. 하하.”
자신의 단점을 꿰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이율배반적 매력이야말로 이 노배우의 롱런 비결이 아닐까. 50대인 김방옥 동국대 교수는 “그 나이에 현대적 여성의 복합적이고 분열적인 모습을 동시대적으로 포착하는 감성이 감탄스럽다”고 평했다. 60대 극작가 정복근 씨도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한 섬세한 연기”를 칭찬했다. 30대인 손상원 대표는 “모성애와 여성미가 함께 숨쉬는 연기를 보여준 거의 유일한 배우”라고 말했다.
윤소정의 이율배반적 매력은 에스메와 닮은 듯 다른 연기인생에서 확인된다. 그는 남편 오현경 씨와 더불어 40년 넘게 연극계 간판배우로 활약했다. 배우인 딸 오지혜 씨는 극중 딸인 에이미를 닮았다. 누구보다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마, 이제 그만 은퇴하시지”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사위가 영화감독인 점도 같다. 영화 ‘이대로, 죽을 순 없다’를 찍은 사위 이영은 감독은 연극을 본 뒤 “내게 불만이 있으면 직접 말씀하시지 무대 위에서 표출하실 것까지야…”라며 농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나 연극우월론자인 에스메와 달리 윤 씨는 “내가 사위를 얼마나 예뻐하는데”라며 영상매체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가 연기에 입문한 경로도 영상매체였다. 아버지 윤봉춘 감독의 영화에서 두 번이나 주연을 맡았고 1962년 동양방송(TBC) 공채탤런트 1기로 합격했다.
○ “연극배우로 산 40여 년 내겐 영광이자 행복”
“당시 나처럼 눈 코 입이 큰 얼굴은 화면에 그로테스크하게 나왔죠. 그래서 연극무대로 돌았는데 멀리서도 이목구비가 뚜렷이 보인다고 좋아들 한걸. 진짜 연기를 잘해 그러는 줄 알고 연극만 한 거예요.”
후배 여배우들을 위해 ‘연극 여배우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들려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다시금 이율배반적 답이 나왔다. “연극배우로 산 것이 제겐 아주 큰 영광이자 행복이었습니다. 여자로 태어나 최고의 직업이 배우이고, 그 배우 중에서 최고가 연극배우라고 생각하니까요. 다시 태어나도 모든 것을 다 주고라도 연극배우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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