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美-蘇 전면전은 바로 ‘核戰’ 그래서 택한 전쟁이 ‘冷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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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7일 03시 00분


◇ 냉전의 역사/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정철, 강규형 옮김/448쪽·2만3000원·에코리브르

1945년 7월 독일 포츠담에서 만난 윈스턴 처칠과 해리 트루먼, 이오시프 스탈린(왼쪽부터). 사진 제공 에코리브르
1945년 7월 독일 포츠담에서 만난 윈스턴 처칠과 해리 트루먼, 이오시프 스탈린(왼쪽부터). 사진 제공 에코리브르
“트루먼 대통령: 우리는 (6·25전쟁의) 군사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무엇이든 취할 것입니다.

기자: 거기에는 원자폭탄도 포함됩니까?

트루먼 대통령: 거기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무기가 포함되고…군 사령관은 늘 그랬듯이 무기 사용에 책임을 질 것입니다.”(1950년 11월 30일 기자회견 중에서)

미국 예일대에서 ‘냉전의 역사’를 강의하는 세계적 석학인 저자가 젊은 세대가 1945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 대 소련, 서방 대 공산 진영 간 냉전의 역사를 개괄할 수 있도록 엮은 책이다. 저자는 ‘그 장대하고 아찔했던 순간들’에서 누군가 잘못된 판단을 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냉전기의 주역이었던 스탈린 트루먼 레이건 고르바초프 등의 생각과 역할을 생생하게 그리며 당시의 정치 외교 문화 사회상을 논픽션으로 엮었다.

저자는 냉전의 의미를 남다른 시각으로 해석한다. 미국과 소련을 두 축으로 하는 긴장의 연속은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전면전을 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핵무기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을 인류가 실감하고 1952년 11월 1일 미국의 첫 수소폭탄 실험이 이어지면서 강대국 사이의 전면전은 결과적으로 지양됐다. 이것이 바로 냉전이었고 그 결과 1945년 이후 벌어진 전쟁은 모두 초강대국과 약소국 간 전쟁이거나 약소국끼리의 전쟁이었다.

1950년 발발한 6·25전쟁도 바로 그 가운데 있다. 핵무기를 통해 6·25전쟁을 끝내려고 했던 트루먼이 핵전쟁 확산에 대한 두려움과 정확한 목표 지점을 정하지 못해 고민했던 자취도 생생하게 그렸다. 저자는 김일성 마오쩌둥 스탈린 모두에게 6·25전쟁 발발의 책임을 묻는다. 한편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한국과 독일, 베트남을 인위적으로 분단시키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비용을 들인 일은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냉전 초기였던 1948년 조지 오웰은 소련의 영향을 받아 빅 브러더(독재자)라는 거대하고 어두운 예언을 담은 소설 ‘1984’를 탈고했다. 실제 1984년이 왔을 때 냉전은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았지만 레이건은 미국인과 소련인의 공존을 말했다. 레이건의 연설 1년 뒤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개방 정책을 폈고 그 뒤 냉전은 무너졌다. 저자는 1975년 헬싱키협정과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폴란드 방문 등이 복잡하게 작용해 냉전의 종식을 도왔다고 설명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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