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2달러 오를 때마다 車-항공기-비닐 차례로 타격
“갤런당 18달러면 철도시대… 능률-효율이 세계 지배할것”
◇ 석유종말시계/크리스토퍼 스타이너 지음·박산호 옮김/356쪽·1만5000원·시공사
2008년, 미국 내 유가가 1갤런(약 3.78L)에 약 4달러까지 치솟았다. 금융위기의 여파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내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가는 갤런당 약 1달러였다. 유가 앙등의 결과는 명백했다. 자동차 판매량, 특히 연료 소모가 많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량이 급감했다. 미국인의 대중교통 이용 횟수는 전년 대비 3억 회가 늘었다.
포브스지의 수석기자인 저자는 “장기적으로 유가에 대한 예측을 진지하게 해보면 결론은 단 하나,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유가가 오른 뒤 세계는 어떻게 변할까. 유가가 갤런당 4달러일 때부터 20달러일 때까지, 각종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석유 없는 세계’의 미래를 그렸다.
저자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을 때쯤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 중 하나나 둘은 이미 2008년의 고유가와 경기후퇴 효과가 합쳐져 무릎을 꿇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크라이슬러와 제너럴모터스는 2009년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유가가 갤런당 8달러가 될 경우 가장 큰 충격을 받는 것은 항공업계다. 전체 운영비의 60%가 연료비로 들어가게 된다. 항공운임이 크게 오르기 때문에 항공편을 이용해 가족을 방문하거나 휴가를 보내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고유가가 자동차산업 몰락 같은 부정적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데이비드 그라보스키 하버드대 교수는 유가가 10% 오를 때마다 교통사고 사망률이 2.3%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더 많은 사람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비만율도 낮아진다. 대기오염도 ‘어쩔 수 없이’ 줄어든다.
요즘도 상점에서 비닐봉투에 값을 매기거나 종이봉투와 장바구니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지만 유가 10달러 시대가 오면 석유를 원료로 한 비닐봉투나 플라스틱 용기는 사라질 것이다. 이미 곡물과 설탕을 재료로 한 바이오플라스틱이 개발돼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갤런당 12달러가 되면 사람들이 자동차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해 교외에서 다시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뉴욕처럼 건물들이 조밀하게 배치돼 이동거리가 짧고 대중교통이 잘 정비된 곳이 살기 좋은 곳으로 떠오른다.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모델로 저자는 현재 건설 중인 한국의 송도신도시를 꼽는다. 고층빌딩이 한가운데의 공원을 둘러싼 가운데 건물마다 에너지와 물을 절약하기 위한 시설을 갖췄기 때문이다.
유가가 갤런당 16달러로 오르면 식탁에서 초밥, 특히 참치초밥 찾기가 어려워진다. 참다랑어를 잡기 위한 원양어업은 연료가 많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주로 집 근처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먹기 시작한다. 평생 농부로 일해 온 팀 풀러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시카고 같은 도시들은 10에이커(약 4만469m²)에서 100에이커, 심지어 500에이커까지 되는 농장들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가 18달러 시대가 오면 그것은 곧 철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미 전 세계에서 전기를 이용한 고속철도 건설이 활성화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유권자들은 2008년 말 철도 건설 활성화를 위한 100억 달러짜리 주 정부 채권 발행에 동의했다.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도 철도 건설을 위한 움직임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어 갤런당 유가 20달러 시대. 석유의 종말이 보이더라도 세계는 종말과 거리가 있다. 태양, 수력, 원자력 등 다양한 에너지의 개발이 촉진돼 석유의 자리를 대신한다. 무엇보다 인류는 석유를 아끼는 방법을 실천하게 된다. 철도와 지역농장, 에너지 절약 시스템이 보편화된다. 저자는 말한다. “미래의 에너지 세계는 단순히 ‘지금 효과가 있으니 굳이 뜯어고칠 필요 없다’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능률과 효율을 따지는 방식에 따라 지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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