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샐린저 화나게 한 ‘호밀밭의 파수꾼’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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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7일 03시 00분


◇ 60년 후, 호밀밭을 지나서/J D 캘리포니아 지음·최인자 옮김/288쪽·1만1000원·문학세계사

“그러니까 내 말은, 나이가 들어서 절대 늙은 스펜서 선생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무릎은 굽힐 때마다 환장하게 아프고 내 등의 통증은 좀처럼 사라질 줄을 모른다. 또한 내가 심호흡을 하려고 할 때면 가슴에서 뭔가 숨구멍을 탁 막는다.”

세상에 대한 반항과 조롱으로 가득 찬 냉소적인 독백. 비속어가 드문드문 섞인 이런 어조가 낯익게 들리거나 펜시 고등학교의 나이 많은 역사 교사인 ‘스펜서 선생’이 누구인지 눈치 챈 독자들이라면 올해 타계한 J D 샐린저의 불후의 걸작 ‘호밀밭의 파수꾼’을 금세 떠올릴 것이다.

이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속편 격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원작에서 사춘기 특유의 감수성과 반항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콜필드가 이 책에서는 76세의 늙은 노인이 돼 다시 뉴욕의 거리에 나선다. 다만 이번에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뉴욕 주의 한 요양원을 뛰쳐나왔다. 이런 설정들은 대부분의 패러디들이 그렇듯 다분히 유머러스하다. 그러나 서사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원작의 주요 등장인물과 모티브들 역시 그대로 반복된다. 색다른 것은 원작자인 J D 샐린저가 자신이 창조해 놓고 방치한 콜필드란 인물을 없애버리기 위해 이 속편을 쓴 것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세계적 명성 속에서도 지독한 은둔생활을 해온 원작자 샐린저는 허락 없이 자신의 작품을 모티브로 속편을 쓴 것에 분노해 판매금지를 요구하며 법정소송을 벌였다. 미국에서 이 작품은 ‘표절’ 판정과 함께 판매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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