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작가 박은선 씨가 진정 보여주고 싶은 것은 ‘비움’과 ‘부재’의 공간이다. 보름 이상 꼬박 고생하며 전시장 벽에 검은색 라인테이프를 붙여 창조한 성채는 웅장하다. 하지만 전시를 마치고 테이프를 떼어내는 순간 성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텅 빈 평면으로 되돌아간다.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룩스에서 열리는 박 씨의 ‘성-Castle’전은 라인테이프로 만든 가변설치작품을 비롯해 영상, 캔버스, 오브제가 어우러지며 실체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오늘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성이란 우리가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이다. 동시에 자칫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의 신기루 혹은 등에 짊어지고 가야 하는 굴레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에 빗댄 허구적이며 비현실적 공간을 통해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허상일 수 있음을 일깨운다. 특히 영상작품(4분 40초)이 인상적이다. 줄타기하듯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진 선(線)을 따라 걸어가는 남자.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공간을 휘젓고 다니던 그는 한순간 사라진다. 이어 고정된 것으로 믿은 선이 개미로 변하면서 해체되고 텅 빈 여백만 남는다.
“영원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시대가, 세대가 변하며 허물어진다. 그럼에도 자기 생각이 전부인양 고집부리며 다툼을 일삼는 인간들.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차원 평면이 3차원 입체로 보이는 것은 착시 때문이다. 공간의 관계를 탐구한 이 전시는 무언가 소유하고, 무언가가 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도 이처럼 허망한 것이 아니냐고 묻고 있다. 02-720-8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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