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곰인형 눈에 비친 소녀의 인생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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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6일 03시 00분


◇ 누누르의 추억/도미니끄 매 글·임지현, 오상수 그림/72쪽·9800원·새터

곰인형의 눈으로 한 여자아이의 평생을 묘사한 누누르의 추억. 사진 제공 새터
곰인형의 눈으로 한 여자아이의 평생을 묘사한 누누르의 추억. 사진 제공 새터
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발랄한 곰 인형. 어느 날 장난감 가게에 젊은 남자가 찾아와 나를 골랐다. 간밤에 잠을 몹시 설친 듯한 얼굴의 그는 값을 치르고 점원에게서 나를 빼앗듯이 얼른 안고는 밖으로 나와 소리를 질렀다. 다 큰 남자가 곰 인형을 흔들며 좋아하는 걸 보고 행인들이 웃었다. 남자의 첫딸이 태어난 것이다.

집에 온 나는 남자의 딸인 공주님 옆에 앉았다. 공주님은 잠을 많이 잤는데, 잠자는 동안 흥미로운 꿈을 꾸는 것을 나는 느꼈다. 공주님은 열심히 먹고 쑥쑥 자라 걸음마를 떼더니 얼마 지나자 뛰어다녔다. “어쩜 저렇게 귀여울 수가!” 엄마와 아빠는 공주님을 무척 예뻐했다.

하지만 인간은 불완전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면서 아빠는 집에 늦게 들어오곤 했다. 그러다 엄마, 아빠는 헤어지기로 합의하고 짐을 쌌다. 나는 공주님과 함께 거실 커튼 사이로 드문드문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엄마는 거실 구석에 앉아 오열했다. 공주님이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공주님이 그녀의 엄마 같았다.

공주님에게 첫사랑이 찾아왔다. 솔직히 말해 그 남자는 정말 못생겼다. 눈에 총기라고는 없었다. 그는 억지로 공주님에게 뽀뽀를 했다. 공주님이 그를 밀쳤고 첫사랑은 그렇게 잔인하게 끝났다. 내 뺨 위로 그녀의 눈물 젖은 뺨이 포개졌다.

공주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해 두 개의 물방울처럼 그녀와 똑 닮은 아기를 낳았다. 나는 털이 꺼칠해진 늙은 곰이 됐다. 공주님이 속삭이며 나를 안아주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나보다 더 늙은 공주님의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다. 공주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사람들은 슬플 때 꼭 만나곤 한다. 벨기에 출신의 그림책 작가인 저자는 이 책에 곰 인형의 눈으로 바라본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담았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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