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몸 하나로 견디면서/봄이 오길 간절히 기다려/땅에서 피는 꽃이 있다면/바다에서 피는 꽃은 있느니/제 뼛속 붉은 피 끓여/제 살 속에 꽃 피우며/봄을 기다리는 봄 도다리 있다/그놈들 뼈째로 썰어 씹다가/입 속에서 펑펑 터지는 바다 꽃/그 꽃 소식을 알지 못한다면/당신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정일근의 ‘봄 도다리’에서>
봄 바다에 풀이 돋고 있다. 봄 들판에 달래 냉이 씀바귀가 있다면, 봄 바다엔 미역 감태 김 파래가 있다. 남해 통영 거제 여수 앞바다의 도다리가 살이 통통하게 오를 때쯤이면, 무안 신안 완도 장흥 태안 갯벌에선 감태가 초록 융단처럼 펼쳐진다. 윤기 자르르한 ‘바다 보리밭’이 출렁인다. 갯벌머리털이 바람에 일렁인다.
감태(甘苔)는 달 ‘甘(감)’에 이끼 ‘苔(태)’의 합성어이다. ‘단 이끼’라는 것이다. 쌉쌀하면서도 달다. 오염되지 않은 갯벌에서만 자란다. 양식도 되지 않는다. 바다에서 나는 씀바귀라고나 할까. 뿌리는 놔두고 위쪽 부드러운 부분만 자른다. 뿌리 쪽 밑 부분은 억세고 질겨 못 먹는다.
감태는 밝은 초록색이다. 매생이보다 올이 굵고 향이 뛰어나다. 일부에선 가시파래라고도 부르지만 바위에서 자라는 파래하고는 다르다. 채취한 감태는 찬물에 풀어 감태발로 얇게 떠 말리면 감태김이 된다. 1톳 100장 묶음에 2만5000∼3만 원 정도다. 무침용 감태는 감태김과 달리 두툼하게 말린다.
파래는 향이 바다풀 중에서 가장 진하다. 철분이 많아 빈혈에 좋다. 입안에 들어가면 돼지비계를 씹은 듯 두툼하다. 파래 비린 맛은 식초를 넣으면 가신다. 그래서 파래는 초무침으로 먹어야 제격이다. 매생이는 파래보다 부드럽고 감칠맛이 난다. 해초 중에서 올이 가장 가늘다. 누에 실보다 가늘어 ‘실크파래’라고 부른다. 굴을 넣어 국으로 끓여먹으면 은은한 바다냄새가 솔솔 난다. 뭉클뭉클 너무 부드러워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것 같다. ‘바다의 솜사탕’이다.
감태는 미네랄 덩어리이다. 요오드, 칼슘, 비타민B12가 가득하다. 노화방지성분인 시놀과 섬유질이 풍부하다. 당뇨 고지혈증에 좋다. 감태는 국으로는 먹을 수 없다. 무침이나 감태김으로 싸서 먹는다. 감태김은 ‘갯벌의 밥도둑’으로 불릴 정도로 맛있다. 굽지 않고 그대로 싸 먹는 게 최고다. 익히거나 구우면 색깔이 변할 뿐더러 향과 맛이 떨어진다. 감태 김치도 있다. 감태에 마늘, 생강 그리고 찧은 풋고추를 넣고 곰삭게 놔두면 된다. 김 무럭무럭 나는 고봉밥에 얹어먹으면 기가 막히다. 연방 “호오! 호오!” 입소리를 내면서도 젓가락은 자꾸만 감태 김치 쪽으로 간다. 배추김치와 섞어 참기름에 비벼 먹어도 꿀맛이다. 비 오는 날엔 감태부침개를 부쳐 먹는다. 맛이 아득하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세상이 어찌되든 알 바 아니다.
‘날치는 날쌔게 나는 것이 좋아/바다 위를 솟구쳐서 날아보고./주꾸미는 쭈그리고 숨쉬는 것이 좋아/빈 소라껍질 속에 쭈그리고 숨고./따개비는 다닥다닥 붙어살기 좋아/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살고./넙치는 납작하게 엎드리는 것이 좋아/바다 밑 모래 위에 납작하게 엎드리고.’ <김명수 동시 ‘좋아, 좋아’에서>
미역은 뭐가 좋아 갯바위에 딱 붙어살까. 뭐가 좋아 뿌리로 바위를 지악스럽게 붙들고 있을까. 미역은 미끌미끌하다. 겉에서 미끈거리는 점액질이 나온다. 바로 알긴산이라는 성분이다. 이 미끌미끌한 식이섬유는 칼로리가 없다. 에너지를 내지 않는다. 흡수되지 않지만 먹으면 적당히 배부른 느낌을 준다. 다이어트에 좋다.
알긴산은 위의 점막을 자극해 소화운동을 높여주고 대장운동을 원활하게 해줘 배변을 돕는다. 대장암 당뇨병 고혈압 예방에 좋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춰준다. 황사가 일 때는 미역을 많이 먹어야 미세먼지나 중금속이 몸 밖으로 나온다.
미역은 한자로 ‘해대(海帶)’라고 한다. ‘갯바위 허리띠’라는 뜻이다. 그만큼 미역은 바위에 단단히 붙어산다. 자연산미역은 2∼4월에 딴다. 미역은 ‘해채(海菜)’ 즉 ‘바다의 채소’라고도 불린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채소보다 많아 붙은 이름이다. 비타민A, B1, B2, C 등과 칼슘 요오드 소듐 칼륨 등의 무기질이 풍부하다.
자연산 미역은 오래 끓여도 퍼지지 않는다. 풀어지지 않고 진한 국물이 우러나온다. 양식미역은 푹 끓이면 퍼져버린다. 국 끓여놓으면 미역이 다 풀어져 영 제 맛이 안 난다.
미역은 1300년대부터 양식을 했다. 요즘은 대부분 양식미역이다. 기장미역이 으뜸이다. 기장 앞바다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이다. 기장미역은 잎이 좁고 길며 두껍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 향이 좋고 씹는 맛도 독특하다. 끓이면 잘 풀어지지 않고 국물 위로 뜬다. 대부분 건조미역으로 쓴다. 미역은 성장속도가 빨라 쑥쑥 잘 자란다. 채취한 미역은 뜨거운 물에 담가 염분을 뺀 다음 말린다. 기장미역이 아닌 것은 주로 생미역이나 염장미역으로 사용한다.
생미역은 두껍고 고르게 퍼진 검푸른 빛에 윤기가 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마른미역은 찬물에 불려야 맛이 빠지지 않고 조리했을 때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마른미역은 보통 10∼15배 불어난다.
미역국은 미역에 옥돔 광어 가자미 우럭 마른조개 홍합 쇠고기 등을 넣어 끓인다.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미역은 파 종류와 같이 먹으면 안 된다. 파에 있는 인과 유황성분이 미역의 칼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산모는 미역국과 흰쌀밥을 첫국밥으로 먹는다. 간간하고 짭조름한 미역국. 자궁의 수축을 돕고 젖 분비를 촉진한다. 피를 맑게 한다. 생일날은 왜 미역국을 먹는가. 그것은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나를 낳고 첫국밥으로 미역국을 먹었던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부처님이다. 예수님이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어깨를 두들기는 바람에게나 물어볼까/겨울비에 묻어오는/어머니 발걸음 소리 들을까/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어깨를 두들기는 겨울비에 물어볼까/바람에 묻어오는/어머니 염불소리/천상의/나의 어머니’ <조병철의 ‘겨울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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