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봄 일본 히로시마 현 구레(吳) 시에 ‘해사역사과학관’이 문을 열었다. 박물관의 별칭은 ‘야마토뮤지엄’. 박물관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전함 야마토의 10분의 1 크기 모형이다. 야마토는 무사시와 함께 태평양전쟁 당시 세계 최강의 전함으로 평가받았지만 1945년 4월 오키나와 인근 해역에서 미 해군에게 격침됐다. 개장 첫해 이 박물관에는 1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현대 일본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일본 내 전쟁에 관한 책과 만화영화, 박물관 등을 분석한 연구가 나왔다. 서울대 일본연구소의 ‘일본비평’(그린비) 2010년 상반기호 특집 ‘전후 일본의 제국 기억’에 실린 논문이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논문 ‘전쟁기억과 재현을 둘러싼 지역정치-구레의 해사역사과학관을 중심으로’에서 일명 ‘야마토뮤지엄’의 건립 과정을 통해 일본 지역사회가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분석했다.
구레 시는 1889년 일본 제국헌법의 발효와 함께 해군진수(進水)부가 설치된 곳이다. 전함 야마토가 진수된 곳도 구레 시다. 정 교수는 박물관 건립 과정에서 (지역사회가) “구레를 세계적인 선박건조기술을 보유한 장소로 재현하는 데 주력했다”며 “일본의 우경화·군사화가 중앙에서의 정치적 움직임에만 좌우되지 않으며 지방에서 일정한 물적 기반을 가지고 진행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헬렌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대 교수는 논문 ‘전함 야마토의 유령들’을 통해 야마토를 보는 일본인들의 속내를 한층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에서 시작된 야마토에 대한 일본인의 환상을 분석한 이 논문은 전함 야마토를 전쟁 당시 일본의 기술력을 증명함으로써 패전으로 상처받은 일본인의 자부심을 지탱해주는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임성모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논문 ‘전후 일본의 만주 기억, 그 배후와 회로’에서 만주국 출신 일본인들이 남긴 전쟁에 관한 수기를 통해 일본이 만주를 ‘추억과 향수를 느끼는 공간’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전쟁 직후에는 만주국에서 돌아온 일본인들이 기존 일본인들의 차별을 받으며 이들의 기억이 억압됐다. 그 뒤 중-일 관계가 회복되면서 당시 만주국에 관한 귀환자들의 수기가 대거 출간돼 이들을 ‘전쟁을 겪은 피해자’로 자리 매김했다. 최근에는 만주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상품이 개발돼 만주를 ‘옛 고향’ ‘추억’ 등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 외에도 조선 근대시를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한 김소운의 번역 행위를 ‘오리엔탈리즘’의 발로로 본 ‘번역과 제국의 기억’(윤상인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전쟁 당시 일본의 노동력 동원을 통제했던 ‘산업보국회’가 전후 일본의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쳤음을 밝힌 ‘총력전 체제와 기업공동체의 재편’(이종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등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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