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뉴욕에 터 잡은 김보현-변종곤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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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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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터-일터 따로 없이… “인생이 곧 예술”

■ 93세 김보현 화백
한 건물에 집-전시-작업실 “하루도 안 그리면 마음 찜찜”

■ 62세 변종곤 화백
이민초기 물감 살 돈도 없어 버려진 것 모아 오브제 활용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93세 현역 김보현 화백이 자신의 그림 앞에 서 있다. 그는 집과 화실이 자리한 맨해튼의 건물에 아담한 
미술관을 개관했다. 뉴욕=고미석 기자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93세 현역 김보현 화백이 자신의 그림 앞에 서 있다. 그는 집과 화실이 자리한 맨해튼의 건물에 아담한 미술관을 개관했다. 뉴욕=고미석 기자
93세 노화가의 검정 구두는 온통 물감 떨어진 자국으로 뒤덮여 있다. 매일 오전 4시면 잠에서 깨어나 위층 스튜디오로 올라가 꼬박 서너 시간 작업하는 ‘현역 작가’임을 증명하는 ‘훈장’인 셈이다. 작업실 벽에 기대어 놓은 대형 캔버스들에서도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미국 뉴욕에 자리 잡은 김보현(미국명 포 김) 화백의 작업실로 찾아갔을 때 그는 먼저 4층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그가 집과 작업실로 사용하는 건물에 소박한 미술관이 들어섰기 때문. 지난해 주정부의 허가를 받아 정식 개관한 비영리 전시공간의 이름은 ‘월드 앤드 김 갤러리’. 그와 미술가인 부인 실비아 월드 씨(95)의 이름을 딴 이곳은 뉴욕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미술관이다. 지난해 말엔 뉴욕 한국문화원 개원 30주년 행사가 열려 한국 현대미술을 선보였다.

노화가의 집이 공공 미술관으로 변신했다면 뉴욕의 또 다른 작가 변종곤 씨(62)의 아파트는 그 자체로 거대한 ‘설치작품’이면서 기억의 보물창고다. 버려진 것과 벼룩시장에서 사들인 오브제로 빼곡하게 들어찬 그의 집. 시공간을 마구 뒤섞은 ‘이상한 나라의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 월드와 포, 그리고 찰리

김 화백의 가족은 치매로 고생하는 부인, 27년째 동고동락해온 파란 앵무새 찰리가 전부다. 한시도 김 화백의 곁을 떠나지 않는 찰리를 안은 채 김 화백은 말문을 열었다.

“죽은 뒤에 갖고 있는 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 우리 부부의 작품을 영구 보관할 겸 집에 미술관을 만들었다. 한데 몸이 불편한 아내를 돌보느라 밤에 잠을 잘 못자고, 내 그림도 그려야 하고…. 시작은 했지만 걱정이 많다.”

그가 뿌리를 내린 맨해튼 라파예트 거리는 요즘 젊은 뉴요커들이 즐겨 찾는 동네지만 예전엔 낙후된 지역이었다. 1978년 사들인 건물에는 갤러리(4층) 부부 작품 전시실(5층) 집(7층) 작업실(8층)이 있다. 갤러리 규모는 크진 않아도 오랜 시간의 흔적이 배어든 낡은 공간이 독특한 아우라를 풍긴다. 미리 부탁하면 작업실도 둘러볼 수 있다.

옥상의 온실과 철제 계단으로 이어진 작업실로 들어서니 삶의 고통과 환희를 담은 작품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묵화처럼 격렬한 붓질이 춤추는 무채색 그림이 있는가 하면 사람과 동물이 어우러진 드로잉 같은 경쾌한 회화, 환한 파스텔 톤의 추상 작품이 오순도순 이웃하고 있다. 그림을 소개하는 그는 천생 화가였다.

“그림을 안 그리면 할 일을 안 한 것처럼 마음이 안 좋다. 앞으로 더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조선대 교수였던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좌익으로 몰려 고초를 겪다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2년 뒤 뉴욕에 정착해 넥타이에 그림을 그리는 등 밑바닥 생활을 거친 끝에 그림에 전념하게 된다.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 화가는 1990년대 초 다시 조국과 인연을 맺는다. 부부의 작품 430여 점을 조선대에 기증했고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기에 이른다.

○ 버려진 오브제의 천국

시간의 때가 묻은 물건들로 가득 찬 변종곤 씨의 집 겸 작업실은 미니 박물관이나 거대한 설치작품처럼 보인다. 그는 낡은 오브제와 
회화를 결합해 꿈이 담긴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시간의 때가 묻은 물건들로 가득 찬 변종곤 씨의 집 겸 작업실은 미니 박물관이나 거대한 설치작품처럼 보인다. 그는 낡은 오브제와 회화를 결합해 꿈이 담긴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1978년 동아미술대상을 받은 뒤 1981년 도미한 변종곤 씨는 도시의 모든 것이 그에게 ‘늘 깨어나라’고 말하는 뉴욕을 사랑한다. “뉴욕은 가난한 예술가도 가진 사람 못지않게 꿈을 간직하고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이곳에서 새 작업의 열쇠를 발견했다. 물감 살 돈이 없던 그는 버려진 것을 오브제로 활용하는 작업에 눈을 돌린 것.

최근엔 작업실을 분리했지만 브루클린에 자리한 아파트는 그의 집과 작업실을 겸한 공간이었다.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날 정도의 통로만 남긴 채 바닥부터 벽면, 천장, 욕실까지 상상초월의 ‘변종곤 컬렉션’이 자리 잡고 있다.

“전화번호는 외우지 못해도 뭐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안다. 낡고 버려진 것을 결합해 나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코트디부아르의 토기부터 중국의 옛날 현판으로 만든 탁자, 불상과 메릴린 먼로, 신호등에 디스코장 조명, 16세기 회화가 공존하는 공간. 오브제와 회화를 결합한 그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그 틈새로 스며들어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뉴욕=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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