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은 또 하나의 戰場… 필승정신 배웁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8일 03시 00분


軍장병들, 바둑 수강 열풍
한국기원, 11개 부대에 강좌
여성기사들 강사 참여로 인기

“집은 이렇게 짓는 거예요.” 여성 기사인 배윤진 2단이 13일 해병대 1사단 3연대 1대대 식당에서 바둑을 처음 배운 장병들에게
 계가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사진 제공 사이버오로
“집은 이렇게 짓는 거예요.” 여성 기사인 배윤진 2단이 13일 해병대 1사단 3연대 1대대 식당에서 바둑을 처음 배운 장병들에게 계가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사진 제공 사이버오로
“이렇게 계속 단수로 몰아가서 잡는 것이 ‘축’이에요. 알았죠?”

13일 오전 경북 포항시 해병대1사단 3연대 1대대의 식당. 김효정 2단이 낭랑한 목소리로 바둑 규칙을 설명하고 있었다. 대부분 바둑을 처음 접하거나 18급 언저리의 초보인 해병대 장병 150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김 2단과 자석 바둑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날 행사는 군에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 한국기원이 마련한 ‘바둑교실’. 지난해 3월 제65보병사단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1개 부대에서 매주 한 번씩 강좌를 하고 있다. 강사는 여성 프로기사가 맡았다. 보급 1년을 기념해 이날 처음 찾은 해병대 1사단 3연대에는 김효정 2단 외에 배윤진 김선미 2단도 함께했다.

1시간여에 걸친 김효정 2단의 기초 강의가 끝나자 9줄 바둑판으로 실전 대국에 들어갔다. 아직 단수 개념도 생소한 이들이지만 돌 따먹는 재미에 열기가 제법 뜨거웠다. 개중 초보를 면한 장병들은 19줄 바둑을 두기도 했다. 제대를 3일 앞둔 강태유 병장은 “바둑을 처음 두는데 낙하산 점프보다 어렵다”며 “사회에 나가면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대대장인 임호 중령은 “장병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기 위해 한국기원에 바둑 교실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며 “집중력을 높이고 차분한 부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바둑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대대는 ‘생각하는 힘’이라는 모토 아래 바둑 외에도 사병이 1주일에 책 7권을 꼭 읽도록 독려하고 있다.

같은 시간에 차로 10분 거리의 해병대 문덕교회에선 1사단 전차 수송대대 장병들이 단급 인정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이 대대는 지난해 7월부터 바둑 강의를 들어왔다. 이날 황민욱 상병은 김선미 2단과 지도대국을 가진 뒤 9급을 인정받자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는 “어릴 적 억지로 바둑을 잠깐 배웠지만 18급을 면치 못했다”며 “군대에선 꼭 필요한 취미를 갖고 싶어 바둑교실에 참여했는데 재미를 붙여 실력이 쑥쑥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말마다 이창호 9단의 기보를 외우고 정석과 포석 책을 탐독한다고 했다.

군 바둑 교실은 지금까지 8000명의 장병들에게 바둑을 보급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같은 보급의 일등공신은 여성 기사들이다. 김효정 2단은 “전국 각지의 군부대를 돌아다니느라 1년 내내 매주 주말을 반납했다”며 “애인 면회 가는 심정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무를 맡고 있는 박장우 한국기원 보급팀장은 “한 부대에선 사단장에게까지 보고된 ‘말썽 병사’가 바둑을 배운 뒤 흠뻑 빠져 군 생활을 착실히 하고 있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며 “올해 안에 1만 명의 장병에게 보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 여건은 만만치 않다. 한국기원 예산과 인력만으로 바둑교실을 운영하다보니 보급 확산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다.

최규병 9단은 “지역 바둑협회와 동호회도 활용하고 군이나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도 요청할 예정”이라며 “이 사업이 성공하면 바둑 인구 감소를 되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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