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강동윤 9단과 최철한 9단의 결승 3번기를 많은 이들이 이렇게 불렀다.
15일 제주도에서의 결승 1국을 참관한 관계자들은 “둘 다 독사면 독사, 천재면 천재”라고 입을 모았다. 머리를 빡빡 민 강 9단의 독기와 그런 후배를 “귀엽다”는 말로 일축한 최 9단의 독기가 부딪쳐 두 천재의 두뇌 싸움이 불꽃을 튀었다.
별명으로서 ‘천재’는 그 의미가 너무 넓어 밋밋한 느낌을 준다. 천재 중에 천재인 프로기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마치 조금 잘생기면 ‘반상의 꽃미남’처럼 누구에게나 붙일 수 있는 개성 없는 이름표가 되고 만다.
‘독사’ 역시 최 9단이 국수위를 갖고 있었던 2005년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던 별명이다. 그 이미지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당시 ‘최철한 별명 지어주기’ 공모 이벤트가 바둑사이트 사이버오로를 통해 펼쳐지기까지 했다. ‘올인보이’, ‘철권’ 등이 후보로 올랐지만 최종 심사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그 이벤트를 결산하는 기사의 제목은 “미안하다 ‘독사’ 해라”였다. 요즘 최 9단은 별명에 대해 드러내놓고 불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평소 생활에선 ‘순둥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반상에선 독사가 돼야 한다고 다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자기 별명을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기사는 누구일까. ‘일지매’ 유창혁 9단, ‘원펀치’ 원성진 9단, ‘폭풍의 아들’ 송태곤 9단 등이 쟁쟁한 후보들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압권은 바로 ‘반상의 박찬호’ 윤현석 9단이다. 그는 별명을 아끼는 차원을 넘어 별명에 나오는 박 선수의 야구 성적과 자신의 바둑 성적을 동화시키는 경지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박찬호 선수의 성적이 최고조였을 때,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 저도 똑같은 사이클을 겪었어요. 적어도 지금까지는요.” 그래서 윤 9단은 박 선수를 열심히 응원한다.
별명이 없어 고민인 기사들도 있다. 이들에겐 별명에 불만을 가진 기사들마저 행복한 고민에 빠진 자들일 뿐이다.
“별명이 없다는 게 아쉬웠어요. 김성룡(밤톨군), 양건(패트릭 유잉)처럼 어릴 때부터 별명을 달고 다닌 또래 기사들이 부러웠죠.” 윤성현 9단이 들려준 솔직한 이야기다. 여자대표팀 코치로 땀 흘리고 있는 그에게도 조만간 좋은 소식이 생기지 않을까.
별명은 팬들이 주는 애정의 징표이자 바둑의 묘미를 살려주는 감초다. 멋들어진 별명 하나가 바둑 동네를 한결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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