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의 신’은 ‘아트’로 유명한 프랑스 여성극작가 겸 배우 야스미나 레자가 2006년 발표한 희곡을 토대로 한 작품.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는’ 과정을 그려낸 희극이다. 2008년 영국무대에 오른 영어 번안극(매슈 워커스 연출)이 2009년 로렌스 올리비에 상을 수상한 데 이어 미국에서 토니상 작품상 연출상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지금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세 번째 출연진으로 공연 중이다.
국내 무대에서는 프랑스어 원작의 번역극으로 공연한다. 주로 진지한 비극을 무대화해 온 한태숙 씨가 연출을 맡는다. 등장인물은 넷. 동네 친구에게 두들겨 맞은 11세 소년 브루노의 부모인 미셸(김세동)과 베로니카(오지혜)와 동갑내기 가해아동 페르디낭의 부모인 알랭(박지일)과 아네트(서주희)다. 정작 싸움의 빌미를 제공한 아이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두 부부는 처음엔 지성과 교양을 갖춘 중산층답게 고상한 대화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 하지만 대화가 진행되면서 예절 바른 말 뒤에 숨은 감정의 가시, 취향과 세계관의 차이에다 부부간 갈등까지 뒤엉켜 진흙탕 싸움으로 비화한다. 논픽션 작가인 베로니카와 변호사인 알랭은 국제분쟁에 대한 식견에도 불구하고 애들 싸움 하나 해결 못하는 이 시대 지식인을 대변한다. 생활용품 도매상인 미셸과 자산관리사란 칭호의 전업주부 아네트는 남들 눈만 의식해 본심을 감추고 사는 속물이다.
내용에 비해 거창한 제목은 인간이 아무리 문명화돼도 원초적 폭력성만큼은 길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나는 대학살의 신을 믿습니다’라고 토로하는 알랭의 대사에서 따왔다. 브로드웨이 공연에선 극중 아네트 역의 배우가 실제 상황처럼 인정사정없이 구토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우아함 뒤에 숨은 등장인물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기폭제가 되는 이 장면을 어떻게 연출할지가 개성 넘치는 네 배우의 연기대결만큼이나 관심을 모은다. 3만∼5만 원. 4월 6일∼5월 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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