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백석(1912∼1995)의 ‘통영’에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통영에 봄이 익었다. 한산섬 앞바다 물고기들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새벽 서호시장은 떠들썩하다. 갓 잡은 생선처럼 팔딱팔딱 뛴다. 사람들은 기운이 넘쳐흐른다. 도다리 바다메기 생멸치 바닷장어 볼락 털게…. 아주머니들은 물고기가 담긴 고무함지를 펼쳐놓고 “싸요! 싸!”를 외쳐댄다. 그 옆에선 아저씨가 생선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뎅강뎅강 자른다. 봄나물 광주리엔 해쑥 냉이 달래가 가득하다.
시장들머리 허름한 원조시락국집(055-646-5973)에도 사람들이 빼곡하다. 시락국은 ‘시래깃국’의 경상도 사투리. 바닷장어 뼈를 푹 곤 물에 시래기를 넣어 끓인다. 술꾼들 속 다스리는 데 으뜸이다. 45년여 동안 서민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줬다. 영업시간은 오전 4시∼오후 6시.
도다리쑥국엔 봄이 통째로 들어있다. 도다리는 납작하고 마름모꼴이다. 요즘 도다리는 두툼하고 살이 쫄깃하다. 좌광우도. 마주보아 눈이 왼쪽에 쏠려있는 것은 광어이고, 오른쪽에 눈이 모여 있는 것이 도다리다. 통영 사람들은 평소엔 도다리미역국을 끓여 먹는다. 하지만 해쑥이 나오기 전까지만 그렇다. 거문도 욕지도 사량도 한산도 등 남해바다 섬들의 논둑 밭둑에서 자란 조선쑥이 나오면 앞 다퉈 도다리쑥국을 찾는다. 비닐하우스 쑥은 도다리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 4월쯤 쑥이 질기고 억세어 못 먹게 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도다리 탕! 탕! 잘라 넣고, 쌀뜨물에 된장 풀어 끓이면 끝이다. 쑥은 도다리가 완전히 익은 뒤에 넣는다. 너무 일찍 넣으면 쑥이 풀어지고, 향이 사라진다. 색이 노랗게 되어 질겨진다. 봄 도다리는 살이 부드러워 뼈째 회를 쳐 먹는 새꼬시로 먹어야 제격이다. 통영에 와서 졸복국도 빼놓을 수 없다. 통영 앞바다에서 잡히는 졸복은 맛있기로 이름났다. 보통 도다리쑥국을 하는 식당에선 졸복국도 같이 한다.
충무김밥은 한입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다. 엄지손가락만 하다. 김밥 속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냥 생김으로 밥만 만 것이다. 김도 참기름을 바르지 않는다. 맛이 심심하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주꾸미무침(오징어무침)과 깍두기를 곁들여야 비로소 제맛이 난다. 강구안 문화마당 부근에 충무김밥 거리가 있다. 뚱보할매김밥(055-645-2619) 3대충무할매김밥(055-645-9977) 한일김밥(055-645-2647).
통영 다찌집 술값 계산은 전주 막걸리집과 비슷하다. 전주 막걸리집은 막걸리 한 주전자에 1만2000∼1만5000원을 받는 대신 안주는 공짜다. 기본안주 가짓수는 20∼25가지. 한 주전자를 더 시킬 때마다 맛있는 안주가 자꾸 나온다. 막걸리 값은 받아도 추가안주 값은 공짜다.
통영 다찌집 기본 한상은 5만 원이다. 소주 3병과 각종 해물안주 20여 가지가 곁들여 나온다. 이후 소주를 한 병 추가할 때마다 1만 원씩 더 받는다. 술이 추가될 때마다 공짜 안주가 나온다. 울산다찌(055-645-1350). 한 상이 아니라 1인당 2만5000원씩 받는 곳도 있다. 호두나무(055-646-2773).
굴요리는 어떨까. 굴밥 굴구이 굴튀김 굴전 굴회 굴찜 굴보쌈 등 어디 가든 굴요리 천지다. 굴향토집(055-645-4808). 멸치도 제철이다. 멸치회 멸치튀김 멸치밥 멸치회덮밥 등 맛이 달콤하다. 멸치마을(055-645-6729). 해물뚝배기를 안 먹고 가면 서운하다. 꽃게 각종 해물은 기본이다. 미주뚝배기(055-642-0742), 도남식당(055-643-5888).
멍게는 우렁쉥이다.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무척추동물이다. 바위에 붙거나 바다 밑바닥에 파묻혀 산다. 겉은 우둘투둘 볼품없지만 맛은 기가 막히다. ‘바다의 파인애플’이라고 할 수 있다. 상큼 쌉싸래한 단맛이 어우러져 스르르 침이 고인다. 바다에서 나오는 모든 맛의 종합세트다. 향긋하다.
멍게비빔밥은 통영 어느 식당이나 기본이다.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다. 멍게젓갈에 새싹 김가루 깨 등을 섞어 밥과 비벼 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 봄이 혀끝에서 나비처럼 날아다닌다. 행복하고 나른하다. 혀에 담은 뒤끝이 자꾸만 더 먹으라고 채근한다. 천하의 밥도둑이다.
서울에도 통영전문식당이 있다. 다동 하나은행 본점 뒤 충무집(02-776-4088)은 매일 통영에서 직송된 생선과 해쑥으로 맛을 낸다. 도다리쑥국에 멍게비빔밥 한 그릇이면, 온몸에 가득 봄이 출렁인다. 가슴속에 봄꽃이 화르르 핀다. 산수유 꽃이 툭툭 피고, 매화꽃이 살짝 문을 연다. 멸치회 쌈도 맛있다. 2, 3일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 힘들다.
서울의 봄은 맛이 없다. 묵은지의 군내가 난다. 시금털털하다. 건물마다 곤곤한 냄새가 배어 있다. 시큰하고 비릿하다. 통영 앞바다엔 섬들이 연꽃처럼 떠 있다. 저마다 몸을 풀며 신열에 달뜬다. 젖몸살을 앓는다.
섬과 섬 사이에 바다가 있다. 바다와 바다 사이에 섬이 있다. 봄은 섬과 바다 틈새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냄새로 다가온다. 혀끝에 입맛으로 날아온다. 통영의 봄은 맛있다.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하고, 새콤하면서도 쌉싸래하다. 봄맛이 참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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