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또는 40대 여성 관객. 숱한 18일 개봉작 가운데 뱀파이어 액션영화 ‘데이브레이커스’(18세 이상 관람가)를 택했다면 십중팔구 주연을 맡은 에단 호크(40) 때문일 것이다. 혼자 입장했다면 100%. 한때 ‘X세대’라 불렸던 현재의 ‘초보 기성세대’에게 호크는 사랑스럽다기보다 자랑스러운, 오랜 친구를 닮은 아이콘이었다. 2010년의 호크는 여전히 또래 언저리의 감성을 대변한다. 그 빛깔은 맑은 청색에서 흐릿한 잿빛으로 바뀌었지만.
배경은 2019년. 지구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뱀파이어가 된 ‘신인류’가 지배한다. 뱀파이어가 되지 못했거나 되기를 거부한 인간은 포획당해 식량 공급원으로 재배된다. ‘식량 고갈’ 위기를 맞은 뱀파이어들은 혈액 대체재 개발에 열을 올린다. 개발팀의 핵심인력인 연구원 에드워드(에단 호크)는 대체재를 얻기 위해 인간 저항단체와 비밀리에 손을 잡는다.
드라큘라가 처음 영화화됐을 때부터 뱀파이어는 공포와 매혹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대상이었다. 세계의 소녀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미소년 뱀파이어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드라큘라에게 피를 빨리는 여인을 그린 고전영화 포스터의 야릇한 표정을 확장한 이야기다. ‘데이브레이커스’는 미소년 대신 액션의 비주얼을 택했다. 목이 잘리고 팔이 뜯기며 피가 쏟아지지만 ‘공포’의 반응을 겨냥한 장면은 거의 없다.
이야기는 어느 하나 눈에 확 띄는 것 없이 평이하게 흘러간다. 뱀파이어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구워지고 삶아지고 튀겨지고 회까지 쳐졌다. 물질적 계급주의가 뱀파이어 사회에서 발현되는 상황, 돌연변이 뱀파이어 ‘서브사이더’의 흉측한 모습 등은 이미 어디선가 봤던 것들이다. 눈에 걸리는 오브제는 결국 ‘하필 이 영화를 택한 에단 호크’뿐이다. 그는 왜 다시 이렇게 어중간한 시나리오를 골라들었을까.
21년 전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며 책상 위로 발을 내딛던 ‘샌님 반항아’의 해사한 얼굴이 그를 처음 관객의 기억에 남긴 이미지다. ‘늑대 개’(1991년)와 우정을 나누고 얼음산 조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육(人肉)도 먹어보면서(1993년 ‘얼라이브’) 성인이 된 호크는 1994년 확고한 동년배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위노나 라이더와 함께 출연한 ‘청춘 스케치’. 술과 담배에 찌든 심드렁한 얼굴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노래하는 수염 덥수룩한 얼굴은 삶의 방향타를 잃은 당시 20대의 허무한 심정을 솔직하게 대변했다.
꿈같은 사랑을 하고(1995년 ‘비포 선라이즈’) 미래의 우주로 떠났다가(1997년 ‘가타카’) 아예 애니메이션의 몽상 속에 빠져들기도 한(2000년 ‘웨이킹 라이프’) 호크는 30대로 접어든 2001년 평범한 액션영화 ‘트레이닝 데이’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라는 직장에 ‘취업’했다. 그 뒤 하루하루 고달프게 생계를 이어가는 회사원의 일상과 비슷한 범작들이 이어졌다. 생활의 안정을 찾은 뒤 옛사랑과의 설레는 재회(2004년 ‘비포 선셋’)도 해 봤지만 길거리 카페에서 맞담배 피우며 겉도는 대화만 짤막하게 나누다 헤어졌다.
‘데이브레이커스’는 에단 호크에게 별 관심 없는 관객도 그럭저럭 시간 때우기 용으로 삼기 괜찮은 영화다. 호크를 특별하게 기억하는 관객에게 그 유용한 시간 때우기는, 안쓰럽고 아릿하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