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의 용한 열여섯 살 무당 연화는 봄날 궁궐에 불려갔다. 궁궐 안은 흥청망청이었다. 임금과 왕비는 밤새 불을 밝히고 잔치를 벌였다. 왕비는 연화를 불러 자신의 운명을 물었다. 연화는 왕비가 조만간 변고를 치를 운명이라고 말했다. 무슨 방도가 없겠냐는 왕비의 말에 연화는 “굿을 해도 살을 피할 수 없고 마음을 깨끗이 다스려야 한다”고 당돌하게 말했다.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았지만 왕비는 체념한 얼굴로 그만 물러가라는 말을 던졌다.
한성은 멀었다. 고향을 떠날 때 연둣빛 잎사귀는 돌아오는 길에 어느덧 초록이었다. 연화와 함께 한 마루는 먼 길에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연화 어머니 밑에서 함께 자란 마루는 어느덧 턱밑이 거무스름하고 목소리도 걸걸해진 어엿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마루의 얼굴에 드리운 수심은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부모가 억울한 일로 맞아죽는 장면을 보았으니 가슴에 큰 아픔을 지고 가는 것 같았다.
“등에 업히세요.” 마루가 등을 내밀었지만 연화는 “너도 죽을 만큼 피곤할 텐데…”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하얀 얼굴에 키가 큰 세현 도령을 만났다. 박 참판 댁 외아들인 세현 도령은 성품이 섬세하고 고와서 고을의 모든 처자가 연모했다. 마루는 세현 도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연화를 보며 분노에 휩싸였다.
책의 배경은 동학혁명이 벌어지던 19세기 말. 무녀 연화와 그를 흠모하는 마루, 그리고 연화가 흠모하는 세현 도령 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현 도령을 잊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연화를 보며 마루는 어느 날부터 바깥으로 돌기 시작하고 마침내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연화의 눈을 통해 동학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 속에 부유하는 인간 군상들이 담겼다.
저자는 첫 장편동화 ‘안녕, 스퐁나무’로 제8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받았다. ‘나는 조선의 가수’ ‘공주의 배냇저고리’ ‘달려라, 바퀴’ 등의 동화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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