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행복 바이러스’ 전파… 세상 바뀐다고 멈출 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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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3일 03시 00분


월간 ‘샘터’ 창간 40돌… 김재순 고문 인터뷰

김재순 샘터사 고문은 월간 ‘샘터’ 창간 40주년을 기념해 가진 인터뷰에서 “샘터를 만들 때는 하루 한 쪽 이상 책을 읽는 풍토를
 만들자는 의도도 있었다”면서 “요즘 책을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젊은이가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김재순 샘터사 고문은 월간 ‘샘터’ 창간 40주년을 기념해 가진 인터뷰에서 “샘터를 만들 때는 하루 한 쪽 이상 책을 읽는 풍토를 만들자는 의도도 있었다”면서 “요즘 책을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젊은이가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평범한 사람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우리 이웃의 감동적인 사연을 소개해온 월간 ‘샘터’가 창간 40주년을 맞았다. 1970년 4월 창간 때 샘터가 내세운 키워드는 ‘행복’이었다. 김재순 샘터 고문(87·전 국회의장)은 당시 창간사에서 “평범한 사람들끼리 가벼운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면서 행복에의 길을 찾아보자는 뜻에서 샘터를 낸다”고 밝혔다. 직업이 무엇이든, 사회적 지위가 무엇이든 거짓 없이 인생을 사는 사람의 글에는 감동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늘날과 달리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았던 시절, 샘터가 문을 열자 자신의 글 한 줄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줄지어 사연을 보내왔다. 미국에 이민 간 교포, 독일에 파견 간 광원과 간호사들은 이역만리의 애환을 편지와 엽서로 알려왔다. 이런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이야기에 독자들은 울고 웃으며 샘터에서 감동과 행복을 찾았다.

40년이 흐른 지금도 샘터가 추구하는 가치는 변함없이 ‘행복’이다. 40주년 기념호인 4월호의 캐치프레이즈는 ‘내가 만드는 행복, 함께 나누는 기쁨’. 김 고문은 창간 40주년을 기념해 22일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40년 전보다 먹고사는 게 나아졌다고 해서 더 행복한 건 아니다”라면서 “행복은 마음에 달려 있고, 마음으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환경이 어떻게 바뀌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샘터가 창간되던 때는 산업화 바람을 타고 많은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이동하던 시기였다. 김 고문은 “당시 서울은 정말 삭막한 도시였는데 그곳에 한 줄기 샘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잡지를 만들었고 이름을 샘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78년 7월 샘터 통권 100호에 쓴 축사에서 “아스팔트와 시멘트만 보이는 이 황량한 거리에 밝고 푸른 인정의 샘물이 가슴마다 넘쳐흐르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빈다”고 기원했다.

책 주고받기-지역모임 계기
독자끼리 결혼한 경우 많아

초대 편집장 유력 김지하 씨
당시 폐병 심하게 앓아 단념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계하는 동안 뜻하지 않은 결실을 맺기도 했다. 서점이 없어 샘터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름과 주소를 보내면 다른 독자들이 선물로 샘터를 보내주던 코너가 있었는데 책을 주고받은 인연으로 결혼에까지 이른 사람들이 나온 것이다. 샘터라는 이름을 내건 등산모임을 비롯해 지역별 모임도 많이 생겼고, 더 많은 커플이 탄생했다. 김 고문은 그렇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위해 주례도 자주 섰다.

샘터는 법정 스님, 피천득 선생, 이해인 수녀 등 문필가들이 글을 쓰는 마당이기도 했다. 김 고문은 법정 스님에 대한 일화를 한 가지 들려줬다. “어느 날엔가 법정이 평소와 달리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얘기를 하더라고. 순천 송광사에 불일암을 지었다는 얘기였지. 조그마한 암자 하나 지어놓고 기뻐하던 표정이 인상적이었어.”

샘터에는 많은 문인들이 이런 저런 사연을 남겼다. 시인 김지하 씨는 샘터의 초대 편집장 후보에 올랐다. 김 고문은 “1순위였는데 그때 김 시인의 폐병이 심해서 발탁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초대 편집장은 문학평론가인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이 밖에 시인 강은교 정호승 씨, 소설가 김승옥 윤후명 씨, 동화작가 정채봉 씨 등이 샘터에서 일했다. 정채봉 씨는 “평범한 이들의 편지를 매달 수백 통씩 받아보면서 삶을 더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글의 기초를 닦는 데도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때 월 50만 부까지 나가던 샘터의 발행부수가 최근에는 많이 줄었다. 편지, 엽서로 글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는 e메일을 많이 이용하고 아주 짧은 글은 휴대전화 문자로도 온다. 김 고문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샘터가 가는 길도 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샘터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김 고문이 소개하는 샘터의 두 가지 신조도 창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샘터는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벗이 될 것이다’ ‘동심의 세계는 모든 어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샘터로 ‘행복 전도사’를 자처한 김 고문은 어떨 때 행복을 느낄까. 그는 “작거나 크거나 뜻하는 일을 이뤘을 때 행복하다. 봄철에 피어나는 화초를 보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도 생에 대한 충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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